‘호모 이코노미쿠스’와 ‘가격이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경제학의 관념을 통렬히 비판하는 책.
인간은 자신의 감성이 시대를 ‘호황 or 불황’ 중 무엇으로 인지하느냐에 따라 합리성의 방향이 달라진다.
호황과 불황 상황에서의 “스트레스”는 합리성의 발현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180926


“호모 이코노미투스는 합리성을 표방했지만,
실제 인간은 레밍 떼처럼 경기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쓸려다닌다.”


수학과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다가 IBM 연구소의 CTO까지, 퇴임 이후엔 경영컨설팅으로 활동한 경험을 지닌 저자의 경제관이 책 한 권에 담겼다. 경제학 이론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 이유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비현실적인 인간상을 전제한 채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호모 이코노미투스라는 전제를 두 가지 이유로 비판한다. 첫 번째는 ‘호모 이코노미투스가 말하는 합리성에는 논리만 있을 뿐, 인간이 의사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 - 감성, 충동 등 -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인간의 합리성마저 매 순간 일관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며, 각 주체가 처한 경제상황에 따라 합리성의 척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 ‘합리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가격’을 제시하지만, ‘가격’이 합리성의 주요 지표가 되는 때는 보통 경기불황의 초기 단계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호황기의 경우, 경제주체가 ‘합리성’을 발현하는 주된 대상은 가격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 ‘유대감’같은 관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경기상황에 따른 경제주체의 합리성 변화’를 주목했다. 인간은 자신의 감성이 ‘시대’를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합리성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호황일 때와 불황일 때의 선택이 다르며, 경제학의 인간상인 호모 이코노미투스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저자는 경기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선택을 ‘국면적 본능’이라고 명명하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개념들 - 이윤, 분배, 고객, 마케팅, 혁신, 노동자, 경제체제, 심지어는 국가까지도 - 이 어떻게 ‘국면적 본능’의 영향을 받는지를 서술한다.





“호황기에는 ‘본능, 탐욕, 흥분’이, 불황기에는 ‘생존투쟁’이 인간을 지배한다.”



저자는 ‘법칙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이라는 전제로 호황기와 불황기의 특징을 요약한다. 

1. 호황 초기 - 새로운 혁신이 뿌리내린다.
  
사회: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제품에 열광한다. ‘새롭고 의미있는 것’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노동자 공급시장은 말라간다. ‘완벽함, 성숙함, 최고’ 등의 단어가 사회에 통용되며, 기술이 발달하고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경제주체: 고객이 왕이다. (이 정의는 불황기에 고객은 왕을 가장한 ‘봉’으로 바뀌게 된다.) 기업은 자신의 혁신적인 제품을 알리는 데 집중하며, 긍정적인 기업이미지를 형성한다. 직원 채용에도 호의적이며, 최고의 직원을 데려오기 위해 애쓴다. 속도만큼이나 가치가 중요하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노력이, 성실함은 보상받는다’는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가 있으며, 기업 역시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경영학적 관점 중 Y이론이 득세한다. Y이론은 ‘인간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이며, 스스로 의미를 찾을 경우 책임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일하는 주체이며, 따라서 처벌이나 포상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간의 잠재성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로, 인간을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 인식한다. 따라서 기업은 직원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
  
국가체제로는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친다. 혁신을 주도하는 개척자들에게는 기존의 경제이론이나 법칙이 필요하지 않다. 혁신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회는 외친다. 정부는 손 놓고 구경하고 있어라.
  
2. 호황 후기 - 사치스러움, 풍요 속 안일함의 등장
  
매슬로의 5단계 욕구이론은 틀렸다. 대부분의 인간은 기본적인 안위가 해결되면 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욕구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낮은 단계’ 욕구를 즐긴다.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섹스, 더 높은 수준의 건강, 더 많은 것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 지속된 호황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모든 것이 끝없이 보장된 삶, 모든 것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사회를 지배한다. 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오지만, 오래지 않아 무시당한다.
  
사람들은 자기 삶으로 시선을 돌린다. 합리성의 대상이 ‘가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다양해지는 셈이다. 따라서 혁신의 정의는 ‘더 많이, 더 좋게’가 된다. 실용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며, 완벽하다와 뛰어나다는 단어가 점차 사치스러움으로 대체된다. 기업의 경우,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기업의 통제 하에 처리하려 한다. 따라서 채용은 여전히 많고, 시스템은 점차 비대해진다. 관료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기업이 추구하는 혁신이나 가치보다는 기업이 주는 수익이나 혜택에 관심을 갖는다.
  
호황 초기에 공동체를 강하게 유지해오던 에너지가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호황기에 들어오는 자본이 있기에, 정부의 복지 네트워크와 기업의 관료화는 계속 진행된다. 
  
3. 불황 초기 -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국면전환
  
어느 순간, 주가폭락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현상인지, 위험의 시작인지 해석하기 시작한다. 해석 결과와 상관없이, 호황기에 마냥 ‘낮은 수준의 욕구’만 즐기던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예전과 다르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국면 전환이 이루어진다.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컨설팅 회사가 낭비요소를 찾기 위해 기업을 분석한다. 기업의 모든 작업이 수량화되고 정량화되기 시작한다. 기업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지만, 목표 설정, 계획 설정, 책임여부 등이 압박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긴축 조치가 뒤따른다. 근로자는 이제 “당신은 일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노력을 들인 일의 효용은 얼마인가?”에 대답해야 한다. 이제 혁신은 ‘저렴한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방식의 개선’이 된다. 
  
작업공정이 표준화되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인간을 바라보는 경영학적 관점 중 X이론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X이론은 ‘인간은 자극이 주어지면 반응을 하는 개체에 불과하며, 책임은 회피하고 이득은 챙기려는 습성을 지녔다.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야심이 없으므로, 선도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처벌-보상시스템으로 선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낭비를 줄이는 건 소비자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소비자는 가격을 바탕으로 합리성을 발휘한다.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과 효용을 본격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한다. 가격대비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 표준화 제품이 부각되며, 사치품은 아직 여력이 있는 몇몇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국가관으로는 케인즈식 국가개입이 인기를 끈다. 경기하락을 정부 수요의 증가로 해결하고자 하는 경제학자의 목소리가 커지며, 정부는 호황기에 비축한 재원이 있으므로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4. 불황 후기 - 아비규환 생존경쟁
  
낭비도 줄이고 효율성도 끌어올렸는데 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제주체는 이제 ‘생존경쟁’에 직면한다. 기업은 X이론에 근거해 보상-처벌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에 비해 성과 보상에는 인색해진다. 기업의 요구조건은 늘어나지만 보상은 미약해지므로, 근로자가 받는 압박은 가중된다. 팍팍한 지갑사정은 고객을 왕이 아니라 수익을 위한 ‘봉’으로 전락시키며, 아웃소싱과 같이 비용절감을 위한 전략이 보편화된다. 기업 내부 근로자를 대체가능한 상품 혹은 자원으로 대하게 된다.
  
이 시기의 혁신은 ‘생존을 돕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이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고객과의 약속, 신뢰, 가치 모두 생존이라는 절대명제 앞에 무색해진다. 고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도록 서비스 약관이 복잡해지고, 계약서가 교묘해지며, 한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렬화’된다. 고객도 이 사실을 알기에, 판매자에게서 최대한의 효용을 빼낸 다음, 가장 저가에 파는 판매자를 찾아 거래한다.
  
즉 극심한 경기불황 후반기에는 시장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신뢰관계조차 생존투쟁 앞에 무너지며, 신뢰가 무너진 시장은 저품질이 고품질 제품을 몰아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나 소위 ‘레몬시장’화 된다.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효용을 끌어내되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아주 저가라서 품질에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제품과, 이 상황에서조차 믿을 수 있는 초고가 고품질 제품만이 시장을 양분한다. 중간 단계에 있는 수많은 상품 생산자가 몰락하고, 노동 공급자인 근로자들도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렇게 불황기에 일어나는 아비규환 속 생존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프레카리아트’라는 신종 빈곤층으로 내려앉는다. 저자는 ‘경제학의 균형은 물리학의 균형과 달리 수요와 공급이 끊임없이 조절되는 진자운동의 평균점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프레카리아트는 수요와 공급의 진자운동 최전선에서 모든 충격을 감내하는 집단이 된다. 따라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경기 호황과 불황이 현재처럼 지속되는 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삶의 질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해지게 된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비슷한 시기에 ‘경기 전환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생존을 위한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시기, 생존을 넘어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감 혹은 소망이 조금씩 모인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기 시작할 때, 다시 한번 국면이 전환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장을 ‘스트레스’를 분석하는 데 온전히 할애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뇌파 변화, 호르몬 변화까지 분석해가며 경기변동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인간의 인지력, 판단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힌다. 여기에 경제학의 게임이론(죄수의 딜레마) 개념을 접목해, 경기 불황 상황에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인간이 보통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진단한다. 저자의 견해는, 두 주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경우 상호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각 주체가 협력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좀 더 확실히 보장하는 ‘배신’을 하게 된다.

  
결국 저자는 ‘경기 호황기에는 절제를 모르는 탐욕이, 경기 불황기에는 신뢰의 붕괴와 생존투쟁이 경기 진폭을 크게 키우는 원인이며, 이는 호모 이코노미투스의 합리성이 아니라 각 경기상황에서 다수가 휩쓸리는 국면적 본능 때문이다.’ ‘국면적 본능에서 인간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스트레스이며,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신뢰와 배신이라는 선택지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달라진다’는 주장을 편다. 

따라서 저자는 ‘경기변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기준이나 행동규약을 공동체 차원에서 협의할 수 있을까? 모든 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책임이나 규율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근본적인 물음으로는 ‘경기변동에 굴하지 않고, 시장참여자 사이에 신뢰와 진실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스트레스가 원인이다’라는 결론만 놓고 보면 실망스럽다고도 볼 수 있다. 전문가가 제시하는 결론치고는 너무 비전문적인 결말이니까. 또한 저자는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배부른 세력’의 대척점으로 일본 도요타를 높이 평가했다. 도요타의 근면한 기업정신이 호황과 불황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일 수 있는 핵심으로 보는 듯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발생한 도요타 대량리콜 사태는 ‘도요타의 기업정신을 이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갖게 한 사건임에도 저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저자 스스로 책 말미에 언급했듯, 무언가 대안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게 미국식 글쓰기라면, 현상에 집중하고 비관적인 접근을 주저하지 않는 게 유럽식 글쓰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목에 혹해 ‘그럴듯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책을 읽은 독자라면 꽤나 실망할 법한 책 구성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투스가 전제하는 일관된 합리성’을 꽤 구체적으로 반박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합리적’이라는 정의를 해석하며, 주어진 상황이 보통 ‘경기가 호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설명도 인상깊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이론을 반박하며 ‘생리적 욕구와 생존이 충족되면 더 높은 욕구를 좇는 게 아니라, 낮은 단계의 욕구를 더 많이 충족하려 한다’는 일갈도 설득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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