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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조직, 국가가 퇴보의 길로 접어들 때 구성원은 ‘이탈’ / ‘항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구성원의 이탈 / 항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충성심’으로, 조직의 퇴보 속도를 늦춰주지만 과할 경우 퇴보를 가속화한다.
조직이 퇴보를 이겨내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탈’ / ‘항의’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어야 하며, 두 방법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는 조직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다르다.


단행본 형식이지만 교양서가 아니라 학술서다. 따라서 주장은 명료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책 서두 ‘옮긴이의 글’이 이 책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책 전체를 읽기 버겁다면 옮긴이의 글만 정독해도 충분하다. 경제학이 다루는 ‘이탈’과 정치학이 다루는 ‘항의’의 개념을 취합해, 퇴보하는 조직을 원상복구하기 위한 구성원의 두 가지 반응양상을 분석하고 효과를 설명한 책이며, 이탈과 항의를 조합했을 때 외려 효과가 좋지 않거나 의도와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조직의 퇴보는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완전경쟁’이 ‘발전은 추구하되 퇴보는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순된 욕망이 만들어낸 가정이라고 본다. 완전경쟁 시스템에서 퇴보는 곧 도태이며, 도태되지 않는 조직은 퇴보 없이 성장해 균형점에 도달한다고 가정한다. 저자는 ‘발전은 곧 잉여 창출을 말하며, 잉여의 창출은 필연적으로 퇴보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주장과 함께, 발전 과정에서 언제든 퇴보의 가능성이 상주하는 ‘느슨한 경제관’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든 발전 뒤에는 퇴보할 수 있고, 이 일시적인 후퇴현상을 원상복구하는 매커니즘이 작동하며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직의 퇴보를 치유하는 두 가지 방법, 이탈과 항의


이탈은 주로 경제학에서 다루던 주제로, 경제학에서는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던 사람이 다른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떠나는 상황”을 지칭한다. 자사의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기업에게 퇴보 경고 신호의 역할을 하며, 신호를 받아들여 개선할 경우 살아남고 아니면 도태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인 허시먼은 경제학의 ‘이탈’ 개념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경제학은 소비자가 기업에게서 이탈하는 변수로 ‘가격’을 상정하고 다른 변수를 가격으로 치환해 설명했으나 (예컨대, 품질이 떨어진다는 건 기업 제품의 상대적 가격이 하락한다는 식으로), 저자는 가격으로 치환할 수 없는 ‘품질’ 변수가 이탈에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다. 가격 변화에 이탈하는 고객은 소비자잉여가 0에 한없이 가까운 소비자인 반면, 품질 변화로 이탈하는 고객은 소비자 잉여가 가장 큰 고객인 경우가 많다.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는 품질에 대한 평가보다 훨씬 단순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품질 차이가 천차만별인 제품이 유통되는 현대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탈’이 기업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개선과 도태를 결정한다는 경제학의 논리 속 허점을 짚는다. 간단히 표현하면, ‘소비자의 이탈’이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지 않는 경우 / 소비자가 불만이 있어도 이탈할 수 없는 경우는 이탈이 역효과를 내거나 효과를 낼 수 없다. 전자는 사실상 독점 상태에 있는 공기업과 같이 소비자의 효용이 기업의 생존과 관련이 없는 경우 / 기업이 품질 향상을 꾀하기보단 이탈하는 고객만큼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고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후자의 경우는 국가나 가족처럼 어느 조직에 속하는 것이 귀속인 경우 / 공공재와 같이 비배제성을 갖는 재화에서 발생한다. 경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탈’만으로 조직의 쇠락을 막아내기 쉽지 않다.
  
항의는 정치학의 영역에 더 가까우며, 이탈이 조용한 방식이라면 항의는 시끄러운 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거나 새로운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등 조직과 사회에도 다양한 형태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이탈 위협을 빌미로 조직 내에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이탈과 항의를 동시에 하는 ‘보이콧’ 형태의 운동도 존재한다. 이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조직의 쇠락을 막을 수 있는 치유책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으나, 발생 방식이나 발생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저자는 구성원이 공공재나 귀속 조직에 속한 경우, 이탈을 억제하고 항의 방식을 권장하는 게 조직의 퇴보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렇듯 조직의 이탈을 막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 방법이 존재하지만, 저자는 이탈과 항의를 조합한다고 해서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컨대 공교육과 사교육이라는 두 서비스를 놓고 보면,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사교육으로 이탈이 쉬운 경우 공교육의 서비스 향상을 위해 항의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모든 기업이 품질 향상보다는 현상유지에만 주력하는 산업일 경우, 경쟁을 촉진해 이탈을 활성화한다 해도 이탈이 실질적인 퇴보 지연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이탈과 항의에게 양날의 검, 충성심



어떤 조직이나 기업이 퇴보하는 것 같아 구성원이 불만을 갖게 되는 시점이 있다. 불만을 갖는 시점 - 불만을 표출하는 시점(항의 또는 이탈) - 조직을 떠나는 시점(이탈) 세 개의 프로세스가 있을 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조직을 떠나는 시점을 조금 더 늦추고 개선을 위한 항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과한 충성심은 항의나 이탈을 ‘이단’ 또는 ‘반역’으로 간주해 불만의 표출을 오히려 억제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퇴보에 대한 피드백 없이 구성원의 탈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충성심은 조직에게 양날의 검이다.
  
역사적으로, 조직이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요구했던 이유가 충성심의 순기능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특이 사항이다. 예컨대 조직에 가입하기 위해서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돈이나 자격조건 등) 이탈 시에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경우의 목적은 충성심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지만, 두 가지 요건은 골수 충성파의 ‘항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형태는 충성심이라는 명목하에 일반 조직원의 이탈과 항의를 둘 다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구성원이 이탈도, 항의도 하지 않길 바라는 경영진이나 수뇌부가 가장 원하는 그림이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충성심을 매개로 ‘조직에 몸담는 비용’을 높인 선택은, 어느 순간 조직원의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갈 경우 강한 저항에 부딪히곤 했다. 



어떤 조합이 최선이라는 해답은 없다.



이탈과 항의, 그리고 촉매제 역할을 하는 충성심을 어떻게 조합해야 최선의 효과를 내는지는 정답이 없다. 조직이 구성원의 이탈과 항의 중 무엇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경영진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조직이 속한 주변 환경과 구성원의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보통의 조직은 항의와 이탈 중 하나가 주된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특이한 선택으로 치부되지만, 자발적 결사체나 정당과 같은 일부 조직은 두 가지 방법 모두가 빈번하게 쓰인다. 여기에 조직원의 충성심이라는 촉매제가 조직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도 조직에 따라 다르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서적은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이 이탈과 항의 중 무엇을 중시하고 있는지 / 조직의 퇴보를 막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좋은 책이었다. 공동체 / 조직을 생각하고 있다면 ‘퇴보는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과, ‘조직이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성원에게 이탈과 항의라는 방법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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