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26 대림미술관

토드 셀비의 작업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그들의 공간, 삶의 방식뿐 아니라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며, 이는 사진 및 일러스트레이션과 같은 친숙한 매체에 작가 특유의 터치를 입혀 유머와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들로 탄생합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일상 속 다양한 만남과 관계를 영감으로 삼아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대중과의 보다 친근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합니다. 이처럼 전시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은 작가의 유연한 사고방식과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이 가득한 셀비의 집으로 관객들을 초대하여, 평범한 일상에 영감이 되어줄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 전시가 흥미를 끌었던 이유는, 다양한 분야 - 디자인, 요리, 예술, 패션 등 -에서 창의성을 인정받는 전문가들, 크리에이터들의 작업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연결과 조합을 현실에 구현하는 장소가 바로 작업실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머릿속에 맴도는 모호한 생각을 구체화하는 규칙이나 패턴 같은 게 있지는 않을지 궁금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일터에서는 어떤 모습인지도 알고 싶었다.





#1. SelBy the Photographer



셀비 더 포토그래퍼(SELBY THE PHOTOGRAPHER)는 토드 셀비가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사적인 공간과, 패션과 요리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작업 공간을 촬영한 약 230여 점의 사진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2001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토드 셀비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과 머물렀던 공간, 그리고 마주친 사람들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이 프로젝트는 2008년 자신의 블로그 ‘더셀비닷컴(theselby.com)’에 공개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섹션의 사진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과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생각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전시였다. 영화 제작자 ‘벤 & 케이시 네이스텟’, 화가이자 염색가인 ‘오드리 루이스 레이놀즈’, 헤어 디자이너 ‘카모 카츠야’ 등 직업이 명확한 유명 크리에이터부터 뉴욕에서 옥상 농장을 운영하는 ‘애니 노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영역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해낸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크롬 하츠(Chrome Hearts)의 수장 리처드 스탁의 작업실. 이 작업실은 토드 셀비가 사진을 찍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었다고..


재미있는 건, 작업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 범주 중 하나였다. (외부인이 보기에)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되어 있거나, 아니면 말끔히 정돈되어 있거나. ‘크리에이터’라는 범주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묶어서인지, 아니면 순전히 개인차인지는 모르겠다. 
독특한 무언가를 창조할 때의 핵심이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무질서하게 보이는 작업실은 크리에이터의 머릿속에 무질서하게 나열된 아이디어, 생각이 반영된 것 아닐까. 어떤 형태의 연결이든 이루어질 수 있는 무질서의 모습. 크리에이터의 뇌 속 모습이 확장된 형태일 수도 있겠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작업실. 압도적인 책의 양과 정갈하게 정리된 작업실의 모습.



'르네상스 포지'라는 공간의 주인 안젤로 가로. 벽난로에 쓰이는 도구를 만드는 장소라는데, 그는 이곳에서 주방기기부터 요리까지 만들어낸다.


반대로, 정돈된 형태의 작업실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연결’을 구체화하는 도구가 있거나 본인이 만들어둔 아이디어 블록들을 체계화한 느낌에 가까웠다. 혼잡한 연결은 뇌가 전담하고, 아이디어의 연결 전후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작업실에 쌓아 두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보통 ‘책’이나 ‘연구 또는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헤어 디자이너 카모 카츠야. 세상 모든 것에서부터 영감의 원천을 얻는다고 한다. 토드 셀비는 그의 얼굴과 함께 일러스트로 벌레를 그려넣었다. 실제로 딱정벌레를 보고도 영감을 얻었다고..


토드 셀비 본인이 느낀 ‘해당 크리에이터의 인상’을 그린 일러스트가 사진 옆에 같이 전시돼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대림미술관 앱으로 큐레이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크리에이터의 이미지와 묘하게 잘 맞아들었다. 때로는 옷차림으로, 때로는 사용하는 도구로, 때로는 생김새와 표정으로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마치 토드 셀비 스타일의 캐리커처 같았다.


큐레이션의 설명으로는, 처음에 토드 셀비 사진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유명인의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나 일상, 작업실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으로 유명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사진으로 보기 어려웠던 때라서, 토드 셀비 본인이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가 유명했다고 한다.


단순히 유명인의 작업실을 찍고,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토드 셀비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토드 셀비가 찍은 사진 몇 장과 작업실, 일러스트를 종합했을 때 ‘크리에이터의 에너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디자이너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하는 유형일 수 있고, 다른 디자이너는 차분하고 분석적인 면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유형일 수도 있다. 토드 셀비의 사진은 이렇듯 여러 가지 다른 유형의 에너지를 사진 몇 장으로, 그가 그려낸 일러스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작업실의 독특함을 강조했거나, 에너지 넘치는 크리에이터 본인의 모습을 많이 담거나, 그의 작품 결과물 위주로 사진을 남기는 등 방법도 제각각이다.

사진이 그림에 비해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화가가 대상을 선택해 그림을 그려내듯이, 사진도 사진가의 선택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그려내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구도나 상황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구현한다. 물론 그림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자유도가 조금 더 높다. 같은 풍경이라면 어떤 사진기로 찍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오지만, 그림은 유화냐 수채화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이. 현실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주관을 담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사진과 그림이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토드 셀비의 경우, 일러스트라는 그림과 사진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해 자신의 주관을 담아냈다. 크리에이터가 주는 이미지, 에너지, 본인이 받은 느낌을 전달하는 상호보완적 방법이다. 특히 토드 셀비는 수채화를 쓰는데, 수채화 특유의 밝고 명랑한 느낌이 셀비 특유의 활기차고 밝은 이미지를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두 번째 전시 #2. Selby the illustrator였다.



하지만 두 번째 전시 illustrator에서는 첫 번째 전시만큼의 사색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전시는 토드 셀비 본인이 좋아하는 몇 가지 주제, 이를테면 동물이나 본인의 취미 등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었다. 동물들의 표정에서 유쾌함이 읽히고, 취미생활을 할 때 토드 셀비 본인이 신나했을 모습이 얼핏얼핏 보일 뿐, 주제를 독특한 시선으로 접근해 그려냈거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그림까지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 전시에서 워낙 인상깊게 본 다음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3. Selby the Storyteller

첫 번째 전시에서 사진과 일러스트로 인물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전했다면, 여기서는 아예 사진과 일러스트를 결합해 인물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액자 형식으로, 액자 안에는 사진을 담고 액자 프레임에 토드 셀비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글쎄, 사진과 일러스트로 스토리를 담아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표현하려면 사람들이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서사구조가 필요한데, 일러스트를 보고 서사구조를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에 관련된 정보가 일러스트 형태로 나열된 건 맞는데, 이 정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토드 셀비가 사진에 담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사진 옆에 한글로 쓰인 설명을 읽고서야 사진 속 인물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가 큰 도움이 되진 못했던 듯하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소개하고 싶다. 


모델 리키와 스타일리스트 빅스 커플. 이 작품의 프레임에는 이 커플의 집에서 발견된 다양한 물건들과 여러 가지 영국 장식품들이 담겨 있다

(고 쓰여 있는 옆의 설명을 읽고서야 일러스트를 이해했다.)


최근 읽었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이다. 이 한 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양 팔에 문신을 하고, 길게 기른 머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보이고, 그 자유로움을 이해하는 커플이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 갖은 부연설명이 없더라도, 사진의 제목을 ‘행복’이라고 명명했을 때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은 사진이었다.



중간에 있던 설치예술을 지나 #4. Selby the Neighbor 테마로 들어왔다. 토드 셀비 본인의 사적 공간인 작업실과 침실, 휴게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었다. 실제로 본인이 쓰는 사진장비와 페인팅 도구도 함께 놓여 있었다. 토드 셀비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작업실


토드 셀비의 경우 작업실과 침실은 꽤나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모습이었지만, 휴게실은 대조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토드 셀비 본인도 작업실을 뇌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형체를 뭐라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책상에, 책상 뒤 찬장에 놓여 있다. 쓰임새도 짐작이 안 가고, 그 자리에 그 물건이 있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개별 아이디어가 흩어져 있는 뇌의 모습 같다고 할까.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저 공간에서 토드 셀비의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보아, #1에서 본 무질서한 작업실의 모습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침실.


침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잠잘 때 뇌에서 가장 활발한 연결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그 모습이 반영된 걸까. 심지어 저자가 설명에서도 ‘어린 시절, 대학 시절, 90년대 후반에 살았던 뉴욕 집, 그리고 현재가 기묘하게 섞여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그냥 내 방 침실처럼 너저분하다.


오히려 독특했던 건 휴게실이었다. 깔끔하다. 바로 옆에 작업실과 침실의 너저분한 모습에 비교해서 더욱. 찬장도 잘 정리돼 있고, 소파 앞의 테이블도 저 정도면 양호하다. 소파 커버 문양이 산만한 듯해도 옆의 난장판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 정도면, 정리를 못해서 작업실과 침실이 더러운 게 아니라, 일하는 곳에서는 특유의 난잡함과 어지러움이 아이디어의 연결에 도움을 주는 요소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토드 셀비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고, 그의 사진에 등장한 크리에이터들 중 내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눈 앞의 작품을 내 생각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꽤나 재미있었다. ‘아이디어의 연결’을 뇌에서만 하는지, 아니면 작업실까지 그 과정이 확장되는 건지 크리에이터들의 작업실을 보며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담은 주관성을 직접 보고 깨닫는 과정까지도.

설령 내 생각이 다 틀렸고 부질없는 일이라 해도,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 생각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는 일은 생각하는 연습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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