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줄요약 독서

초보의 순간들

inspirit941 2018.02.08 22:14


초보의 순간들
  

180202


저자가 무언가를 ‘처음’ 겪던 때의 순간, 그 때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산문집

유년 시기에 겪은 따스한 ‘처음’과, 세상에 발 딛고 느낀 차가운 ‘처음’의 대비

나에게는 ‘처음’이 어떻게 기억됐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


‘다시,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님이 꿈꾸는 최고의 롤모델이 ‘니코르 카잔카스키’였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 조르바처럼, 세상의 자극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었다.
  
‘처음’이라는 순간의 느낌을 오롯이 기억하고, 글로 남길 만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 산문집의 저자 ‘박성환’님이 부족하나마 한국의 카잔카스키처럼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다렸던 그 날’로 시작하는 유년 시기의 ‘처음’ - 첫 생일선물, 첫 돈까스, 첫 교복, 첫 수학여행, 첫 영화 - 에서부터 세상에 던져진 후 겪게 되는 ‘처음’ - 술 마시고 필름이 처음 끊긴 때, 집안의 첫 이사, 처음으로 고시원에 들어가던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을 때, 첫 서른살이 되었을 때 - 까지 한 사람의 인생사를 따라간다. 




저자가 열 살 무렵까지 살았던 곳은 경상도 시골 깡촌이었다. 다니는 학교 전교생이 10여명일 정도의 작은 시골이어서, 가로등보다 산딸기가 익숙한 삶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을 겪은 시기가 열 살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첫 영화도 중학교 CA활동을 하면서 봤고, 컴퓨터도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에 처음 만져 봤다고. 집도 풍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사는 수준이었는데, 고등학교 무렵 닥친 IMF 여파로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중한 감정을 추억할 수 있는 섬세함을 가진 사람이지만, 기억이 형성된 시기도 소위 ‘머리가 좀 크게 된’ 이후이다 보니 더 자세히 기억하는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내게는 유년 시절 ‘처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못해 거의 없다. 느낌도 거의 남지 않았다.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아직까지 기억하지만, 어릴 때 느꼈던 설렘이나 행복은 떠올릴 수가 없다. 첫 교복이 어떤 디자인이고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하지만, 그 교복을 입고 했던 많은 일들은 오히려 희미하다. 저자가 글감으로 쓸 만큼 기억이 남았던 ‘첫 영화’는 내 머릿속에 흔적도 없고, 첫 수학여행은 2008년 금강산에서 있었던 단편적인 사건들만 뇌리에 남아 있다.
  
내 어릴 적 기억과 추억은 오로지 나만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데, 정작 그 당시의 나는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던 걸까. 뭔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 때의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 돌아볼 때 아무 추억도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야겠다, 어떤 지식을 얻어야겠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고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현재를 살면서 시선을 미래에만 고정했으니, 내가 걸어온 과거는 주변부에 머무르다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첫 생일선물로 축구화를 처음 받고 시골 깡촌에서 밑창이 닳도록 신고 다니던 저자의 행복이, 사시 교정수술을 받았지만 집에 선글라스가 없어 검은 옷에 머리를 파묻은 채 세상을 보던 천진함이,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컴퓨터를 보고 마우스 더블클릭을 못 한 게 창피해 울던 순수함이 부러웠다.




유년 시절 밝았던 저자의 추억은 나이 들수록 점차 무거워진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이사를 가야 했는데,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통학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야 했다. 이모네 집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저자는 그 때를 ‘처음 가족과 떨어진 때’라고 회상했다. 이모네 집에 자신을 맡기고 돌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게 마지막일 것 같아서 불안하고 서러웠다고. 
  
나이를 먹고 삶의 무게를 느끼는 ‘처음’은 씁쓸하다. 일 끝나고 집에 왔을 때의 적막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 들은 라디오 소리, 10대와 20대를 지나 처음 ‘서른 살’이 되고 나서 느끼는 인생의 막막함과 불안함, 처음 보는 부모님의 노화와 큰 병치레까지. 언젠가 겪게 될 일이란 건 알지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였다.
  
보통 ‘처음’이라는 수식어나 ‘첫’이라는 접두사를 넣으면 대개 ‘첫사랑’이나 ‘처음 연애’를 떠올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 소주제로 ‘첫사랑’ 이란 단어는 없었다. 왜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는 쓰지 않았던 건지 궁금했는데, 책 가장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의문이 풀렸다. 애초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부터가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였다고... 첫 이별인지 아닌지는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 이별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처음’의 기억은 소주제 하나로 다뤄지지만, 첫 이별의 고통은 ‘초보의 순간들’이란 책 하나를 집필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세줄요약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스퍼드는 어떻게 답을 찾는가  (0) 2018.02.18
게임의 심리학  (0) 2018.02.12
초보의 순간들  (0) 2018.02.08
피로사회  (0) 2018.02.04
걸그룹 경제학  (1) 2018.01.31
일취월장 -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  (0) 2018.01.30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