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 구성원 다수가 따르는 길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

모두가 옳다고 믿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삶’이 과연 ‘옳은 것’인지 반추할 수 있는 책

사회가 제시한 길을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부품처럼 모이고 대체되며 굴러가는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4/2017071402060.html?rsMobile=false
 
나는 이 인터뷰 때문에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보다도, 19년째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경험을 살려 쓴 책이라는 소개가 더 흥미로웠다. 특히 편의점의 ‘소리’에 주목한 저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편의점에서는 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도, 일본 여행을 갔을 때도 편의점 안에서 나는 소리엔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편의점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 중에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행동은 거의 없다. 거의 자동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찾고, 결제를 하고, 자리를 뜬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서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책을 읽게 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 편의점이란 공간을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쓴 책이었으니까.


책은 가볍게 읽힌다.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인공 후루쿠라는 여러 면에서 보통 사람들과 좀 다르다. 공감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감정이 없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싸우는 두 아이를 제지하기 위해 삽으로 둘 중 한 명의 머리를 때렸다. 행동을 멈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싸이코패스나 반사회적인 존재인 건 아니다.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도 있고, 이기적이거나 욕심이 많지도 않다. 마치 사회성이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된 듯한 유형이다. 스스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 또는 기분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거세된 사람 같다.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연애나 섹스 경험도 없고, 취업 생각도 하지 않는 30대 중반의 여성’인 자신의 현 상황을 본인이 평가하질 않는다. ‘난 이렇게 사는 이유가 확실하다’는 주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수긍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이유를 캐묻고, 원하지 않는 조언을 받는 것에 질려서 변화를 시도할 뿐이다. 편의점에서 잠깐 일했던 부랑자 ‘시라하 씨’라는 외간남자를 자기가 살던 집에 들이고, 18년 일한 편의점도 그만둬 본다. 그럼에도 결국 주인공은 다른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다가 들른 편의점에서 자신이 가장 삶의 이유를 느끼는 장소를 다시금 깨닫는 걸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 소설에서 중심을 이루는 전개는 주인공 후루쿠라의 독특함을 이해하거나 수긍하지 못하는 주변 인물과의 갈등이다. 주변 인물이 주인공 후루쿠라에 대립되는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그녀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사회와의 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의 학교 동창들, 편의점 사람들, 주인공의 여동생은 책의 표현에 따르면 ‘이쪽’세계의 사람들이다. 때 되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반면 주인공 후루쿠라와,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에 잠깐 취직했다 쫒겨난 ‘시라하 씨’라는 남자는 그 대척점, ‘저쪽’세계의 사람들이다. 주인공처럼 사회가 정한 ‘평범함’에 무신경한 방관자이거나, 시라하 씨처럼 사회가 정한 평범함에 속하지 못한 - 30대 중반임에도 변변한 직업이나 가정이 없고, 불성실하며, 그러면서도 결혼 상대를 찾아다니는 - 무능력자. 둘 다 ‘왜 아직도 취직하지 않고 있느냐, 결혼은 언제쯤 할 거냐, 아이는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 공세에 피로를 호소하던 사람들이었다. 시라하 씨에게는 뒷담을, 주인공 후루쿠라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결론으로 귀결되는 일이 반복된다. 무능력자는 결국 무리에서 쫒겨나고, 구성원들에게 비난받는다.


편의점에서
p76~77 '그 사람 서른다섯 살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태껏 편의점 알바라니, 이제 슬슬 끝내지 않을까요?' '인생 종 친거지. 그 녀석은 안 돼. 사회의 짐이야. 인간은 말야, 일이나 가정을 통해 사회에 소속하는 게 의무야.' '...후루쿠라 씨처럼 가정 사정이 있다면 이해하겠지만, 그렇죠?'
p89 '그 나이에 편의점 알바에서 잘리면 끝이에요. 그대로 길바닥에 쓰러져 개죽음이나 당하면 좋겠어요!' 모두 소리내어 웃고, 나도 '그래요!'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이물질이 되었을 때는 이렇게 배제를 당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학교 동창회에서
p95 '게이코는 몸이 약해.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어' '예? 하지만 편의점은 서서 일하잖아요? 몸이 약한데?'(주인공 학교 동창 유카리의 남편) -> 나와는 처음 만나면서, 그렇게 몸을 내밀고 미간에 주름을 잡을 만큼 내 존재가 궁금할까?
‘아니, 취직하기는 어려워도 결혼 정도는 하는 게 좋아요. 요즘은 인터넷 결혼이라든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p97 이대로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가요? 그건 왜죠? - 순수하게 묻고 있을 뿐인데, 미호의 남편이 작은 목소리로 '위험해'하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사실, 주인공이 18년간 알바를 하건 말건, 결혼을 하건 말건, 만나는 사람이 있건 없건 편의점 직원이나 동창회 친구들이 참견할 바는 아니다. 조언도 상대방이 필요로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게다가 취직하는 게 좋다, 결혼하는 게 좋다, 아이 낳는 게 좋다는 결론을 누구나 주장하지만, 주인공처럼 ‘그냥 지금처럼 살면 안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 명쾌히 답을 준 사람은 없다. 그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만 말할 뿐이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야 한다. ‘이쪽 세계’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이 길은, 정작 정답인 이유가 없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이쪽 세계’ 사람들이 ‘저쪽 세계’ 사람들에게 이쪽으로 합류하라고, 옳은 삶은 이런 삶이라고 줄기차게 강요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 길을 걷는 자신들도, 자신이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확신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고 믿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주변에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불안을 해소하고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저쪽 세계’ 사람들은 다르다.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믿는 정답으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러면 불안해진다. 내가 믿는 이 길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뒤흔드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쪽 세계’, 즉 다수가 있는 세계는 ‘저쪽 세계’를 압박하고 짓누른다. 그 세계는 틀렸다고. 위험하고 잘못되었다고. 이쪽 세계로 들어오라고. 본인들이 안심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에게는 이 압박을 이겨낼 수 있던 창구가 바로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의 일은 정답이 정해져 있다. 편의점에서 일할 요건을 갖춘 ‘점원’이 되기만 하면 편의점이라는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편의점이라는 ‘세계의 부품’으로서의 본인을 ‘탄생’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역할이 있고, 정답이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 아무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곳. 그게 주인공에겐 편의점이다. 


p23 대학생, 밴드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프리터, 주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같은 제복을 입고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날의 연수가 끝나자 모두 제복을 벗고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꼭 다른 생물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p27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전직 직원이자 무능함 때문에 편의점에서 쫒겨난 '시라하 씨'를 방에 들여 동거한다는 소식이 편의점에 알려진 후에는 직장인 편의점이 주인공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라하 씨'를 비난하고 흉본 다음 잊어버렸던 편의점 점장과 직원들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나아가 두 사람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원치 않는 조언과 참견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p141 평소 130엔인 튀김꼬치를 110엔에 할인 판매한다는 것보다 점원과 옛 점원의 가십을 우선한다는 것은, 편의점 점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둘 다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판매 목표를 신입에게 설명하면서 '그게 지금 이 가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야'. 말하면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점원으로 일하는 동안 우리는 힘을 합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지였는데, 이즈미 씨와 점장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지난 ‘가까운 것들의 사회학’에서 ‘출포족’을 언급했었다. 출세를 포기하고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하는 것,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목표인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현상이야말로 ‘이쪽 세계’에 대한 ‘저쪽 세계’의 조직적인 대항이라 생각한다. ‘이쪽 세계’가 취직과 결혼,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이 정답이라고 제시해도, 그 정답을 추구하며 사는 게 너무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이쪽 세계’의 정답을 강요하는 친척들과 어른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명절 스트레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정답으로 강요하는 ‘이쪽 세계’에 아예 등 돌리고, 다른 정답을 추구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개성을 획일화하고,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로 만들며, 매출 또는 이익이라는 목표가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시되기도 하는 조직이다. 자본주의가 낳았고, 사람을 원료로 돌아가는 기계다. 부품화된 인간에 대한 논의도 분명 있어야 하지만, '편의점인간'이라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는 조금 다른 접근이다.

‘편의점인간’은 남들이 인정하는 정답이 아니더라도, 다시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참견받고 원치 않는 조언을 듣는다 할지라도, 선택의 기로에서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후루쿠라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지금 그대로의 너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식의 값싼 위로를 주는 에세이보다, 갖은 참견과 핀잔에도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삶의 이유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내게는 더 설득력 있었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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