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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독서

피로사회

inspirit941 2018.02.04 10:02

180128




세상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했고, ‘성과사회’에서 개인은 사회가 기대하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한다.

과거 ‘규율사회’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성과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피로는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2012년 3월에 쓰였다는 걸 고려할 때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책이다. 2018년의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삶의 원인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저자는 지난 시간은 ‘부정’과 ‘대립’을 바탕으로 세계가 움직였다고 본다. 나와 남, 안과 밖, 친구와 적이라는 두 가지 개념 사이의 경계가 뚜렷했다.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고, 세계는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형태였다. 낯선 것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면역학적 시대’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러한 대립구도가 소멸해 간다고 보았다. 나와 남의 이질성이 약해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며, 나와 대비되는 타자성의 소멸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특징이 되었다. 나와 남은 뿌리부터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만 있을 뿐 동질적이라는 식의 가치관이 자리를 잡았다. 대립/위험과 같이 ‘부정성’에 근거한 세계관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긍정성’이라는 가치가 채워나갔다.
  
‘~하지 마라’는 부정성이 담긴 규율을 강제하는 국가나 조직은 힘을 잃었고, 대신 ‘~할 수 있다’는 명제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저자는 이 변혁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표현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산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하지 마라’는 부정성으로는 한계생산성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복종하는 주체보다는 스스로 성과를 내는 주체가 더 생산성이 높고 효율적이기에, 사회는 ‘금지’에서 ‘허용’으로 노선을 선회한다.




문제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이 사회 전반을 지배할 때다.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개인은 이 압박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무력하다. 
  
과거의 ‘면역학적 시대’는 사회의 명령이 옳지 않다고 느끼거나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명령에 대립할 수 있었다. 부정과 대립으로 움직이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립과 부정이 사라지고 ‘긍정성’이 과잉인 사회에서는 ‘할 수 있다’를 부정할 수가 없다. 대립할 수 있는 가치가 사라졌고,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동일한 명제를 주입받고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은 더 분주해지고 바빠진다.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서, ‘긍정성의 과잉’인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같은 이유로 움직인다. 저자는 이를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사회’라고 정의하며, ‘과거의 통제, 지배기구의 소멸이 자유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에 몸을 맡기게 된다’고 진단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우울증’이다. 저자는 ‘히스테리’와 우울증을 각각 ‘과거의 면역학적 사회’와 ‘성과사회’로 비유해 설명한다.
히스테리는 심적 억압이나 금지, 부정과 같이 무의식적인 ‘부정’을 전제한다. 따라서 한 인간을 뚜렷이 특징짓는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된다. 심적으로 억압된 사람이 나타내는 히스테리는 유형이 있고, 그룹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때 ‘형태학적 접근’이 가능하다. 금지나 부정으로 사람을 억압하던 시기, ‘면역학적 사회’의 가치관으로 설명 가능한 증상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형체가 없다. 무언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는 무력감,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과도한 긴장과 과부하가 개인의 성격을 파괴하는 현상이다. 자기 자신을 끝까지 소진시켰을 때의 잔해이지만,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게 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부족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낄 때, 실패를 불안해할 때 찾아오는 증상이다. 개인이 열등하다고 느낄 때, 실패가 불안할 때 보여주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특정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과사회’가 만연할 때 발생하는 증상이다.
  
두 번째 문제는 ‘단순한 분주함의 만연함’이다. 저자는 니체의 주장을 빌려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 사물의 세계 속으로 침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성과사회에서 개별 주체는 사색하는 힘을 잃고, 주어진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삶을 영위한다. 깊게 생각하는 힘을 잃고, 그저 분주히 움직이는 기계가 된다는 비판이다.
  
책의 예시가 훌륭하다. ‘걷기’를 생각해 보자. 걷는 행위는 심심한 행위다. 눈과 귀로 주변 자극을 수용한다는 변수를 제거하면, 걷는 일 자체는 지루하다. 현대인은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걷는 행위를 변주한다. 경보, 달리기, 마라톤과 같이.
하지만 걷기의 지루함을 견뎌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사색하는 행동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팔다리의 일정한 움직임을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바꿔버리면, 그게 바로 ‘춤’이다. 경보나 달리기는 ‘걷는다’는 지루한 행위의 변주에 불과하지만, ‘춤’은 새로운 범주의 행동이다. ‘춤’을 생각할 만큼의 창의성이 있으려면, 걷는 행위의 지루함을 견뎌내면서 ‘깊게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색하는 능력’은 성과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저자는 성과사회에서 과도한 부담에 ‘피로’를 느끼는 개인에게 희망이 있다고 봤다. ‘할 수 있다’는 식의 강요를 따르지 못해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피로를 느낀다. 이 피로는 개인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킨다는 점에서는 폭력이다. 하지만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래서 서로의 피로를 공유하고 위로한다면 성과사회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할 수 있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만두는’ 것의 자율성이야말로 긍정성 과잉인 사회에서 필요한 덕목이라는 주장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확실히, 이 책이 쓰인 2012년에는 ‘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만연했다.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공부 잘 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가 사회를 지배했다. 모두가 성과사회의 계율에 따라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노력의 빈자리는 피로와 우울함이 채웠다. 그 때부터,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옆에 ‘위로’와 ‘휴식’이 등장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의 사랑’과 같은 책이 사람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피로를 느낀 사람들이 혼자 좌절하고 절망하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 시기가 바로 2016년 정도부터 지금까지다.


이 책에서 아쉬운 건, ‘성과사회’로의 진입까지는 명쾌히 설명했지만 ‘성과사회’ 다음의 세계를 ‘도핑사회’라는 디스토피아로 예측했다는 점이다. 성과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넘어 ‘약물로 몸을 혹사하는’ 시대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경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인의 무력함을 약물로써 돌파하는 대신, 비슷한 무력감을 겪는 사람과 연대하는 길을 택했다. 성과사회의 계율에 더 이상 마모당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의 저항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짧은 책이지만, 곱씹어서 읽어야 할 만큼 표현도 어렵고 내용도 가볍지 않았다. 저자가 긍정적으로 주장한 ‘사색하는 힘’을 쓰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생각할 점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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