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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 가장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생각들

inspirit941 2017. 11.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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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최근 나타나는 여러 사회현상을 포착하고 묘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의미를 파헤치거나 나름의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 책

저자가 정의한 ‘현대 사회’는 무엇인지 나와 있지 않고, 한국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사건이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어떻게 표현되었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함.

사회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개인의 특징 또는 욕심으로 해석하거나, 틀린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거나, 잘못된 예시를 드는 등 뒤로 갈수록 엉망진창인 책.

cf. 한국 사회를 사회학적으로 진단한 교양서 중에서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훨씬 낫다. 이 책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

처음엔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가까운 곳,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곳을 관찰하고 고민해서 새로운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관찰의 힘 -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래를 보다 (얀 칩체이스 저)’의 한국 특화판이거나, ‘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저)’의 저자처럼 한국 사회의 일상 중 하나를 관찰하면서 세상을 해석하는 식일 줄 알았다.
  
보통, 책을 한 번 집으면 책이 아무리 별로라도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책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통찰력 있는 한 마디 문장이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재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다. 점점 뒤로 갈수록 책이 엉망진창으로 나아가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읽다가 화가 나서 덮어 버렸다.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 중에서는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중 최악이었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모습들을 조명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를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나쁘지 않다.

이 책은 <가까운 마음>, <가까운 돈>, <가까운 미래>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가까운 마음>이 그나마 책의 부제에 충실하다. 스마트폰의 5인치 화면에 익숙해지면서 변화한 우리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거나, 먹방과 쿡방이 뜨는 이유를 맛을 느끼는 인간의 매커니즘과 사회 구조의 변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는 등 꽤 흥미롭게 풀어낸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인간관계의 밀도가 약해지면서 한국인은 ‘나’ 중심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인관계가 소멸한 고독 상태는 피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온라인 반상회 같은 SNS 기반 모임이 활성화되고, 적당한 소속감과 고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카페가 성행한다. 가족 간 대화가 줄어들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대리만족이 가능한 수단으로 먹방과 쿡방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SNS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화된 모습과, 갈수록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의 모습이 맞물린다. 그러다보니 SNS도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고 행복한지’를 경쟁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성과가 최우선인 사회에서 사람은 점점 개별적인 존재로 고립되며, ‘혼자’ 하는 것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와 유관하다. ‘나는 이렇게 혼자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과장과 거짓이 동원되어 SNS를 화려하게 꾸민다.
  
하지만 이 화려함은 자아실현이나 꿈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현실이 요구하는 성과, 기대치가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아실현의 기대치를 낮게 잡는 ‘출포족’의 형태가 나타난다. 비싼 자동차 대신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작은 사치나, You Only Live Once라는 YOLO 움직임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몸 바쳐 일하고 고생해도 사회의 기대치를 충족하기도 어렵고 소위 ‘호구’잡혀 이용만 당할 바에야, 내 한 몸 건사하고 그때그때 행복한 삶을 살면 된다는 생각이 이렇게 형성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이 책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회학'이라는 주제에 슬슬 동떨어진 내용 전개가 시작된다. <가까운 돈> 부분에서는 갑자기 ‘부자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수많은 서적들이나 할 법한 논의를 시작한다. ‘부자의 사고방식’, ‘부자가 돈을 버는 법’ 등이 소상히 언급된다. 물론 사회 현상에서 부와 돈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자 되는 법이나 부자의 사고방식이 ‘가장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생각들’이란 주제에 부합한다는 걸까.


내용도 진부하기 그지없다. 내가 읽었던 ‘부의 추월차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부자 사전’, ‘나는 감옥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 등등 여러 책에서 본 주장과 예시가 거의 그대로 적혀 있다.


오히려 부와 돈을 다루려면, 중국에서 보편화된 ‘현금 없는 사회’, 알리페이나 위챗페이가 지원되는 모바일 앱 하나로 국가 내 모든 서비스의 결제가 가능한 사회를 주제로 다루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중국이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유를 한국 사회의 특징과 비교하는 식의 설명이 책의 주제와 부합하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한국은 신용카드 결제의 편의성이 워낙 발달해 있다 보니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편의성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은 신용카드 제도 없이 바로 모바일 시스템을 도입했기에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안착했다. 그렇다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인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성향을 볼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고민을 담아내는 게 더 알찬 글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책을 읽다 화가 나서 책을 덮은 이유는 내용이 진부해서가 아니다. 마치 부실공사를 한 집이 무너질 징조가 보이듯, 책의 논리가 점점 이상하다 못해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의 제목엔 분명 ‘사회학’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한국 사회와 관련해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려면, ‘사회’ 아니면 ‘한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정의나 진단이 있어야 한다. 기준을 먼저 세워야, 그 기준을 바탕으로 현상을 분석할 수 있고 책의 논조가 일관되게 흘러갈 수 있다. 정의가 잘못되었거나 진단이 틀려서 비판받을 순 있어도, 내가 읽은 거의 모든 책들은 최소한 논리를 전개할 뿌리, 뼈대가 확실했다.


그런데 이 책은 ‘사회’라는 말을 수없이 쓰면서도 정작 ‘사회’에 대한 정의나 기준이 없다. 책 중간중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쓰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도 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 그 자체는 광범위한 사회 변화를 수반하는데, 그 중 어떤 변화를 논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미래, 창의성 있는 베짱이처럼 대비해야 한다’는 식이다.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쓰면서 이런 겉핧기 식의 주장을 책으로 쓴 이유를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는, 주장이 앞뒤가 안 맞거나 근거가 잘못된 주장이 많다. 근거를 잘못 든 주장으로는 부모의 교육열을 이야기한 “제 자식만 함함하길 바랍니다” 부분이 대표적이다. 사교육으로 자녀를 끝없는 공부의 길로 내모는 한국 부모의 모습을 말하며 ‘학생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바에 휘둘린다.’고 언급한다. 과도한 교육열은 부모의 욕심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자녀 스스로 결정한 삶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논리다.


“사회가 정상인가?”에 먼저 의문을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부모의 욕심이 과도한 교육열의 원인이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다. 수능 고득점자일수록 사회 진출 시 평균 수입이 높아진다는 근거가 이미 이 책에 언급된다. 사회학자라면, 수능 점수가 높을수록 사회 연봉이 높아진다는 현상의 이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 연봉이 높은 사람은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왜 부모는 행복하지 않은 길로 자녀를 내몰 수밖에 없는가? 왜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가 ‘수능 고득점’이라는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사교육에 목을 매고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불행을 초래했으니 부모의 잘못이라고 결론 내리면 끝인가?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고, 단지 한국의 부모들이 잘살겠다는 욕심이 넘쳐서 교육열이 이렇게 과도하다는 결론을 내릴 건가? 무책임하게 글을 끝맺는 이 책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가까운 돈> 첫 번째 소주제는 “선택하는 부자, 끌려가는 가난”이다. 앞서 비판한 ‘부자들의 사고방식, 부자가 되는 길’을 제시한 부분이다. 그런데 좀 뒤에는 “흙수저의 연금술”이라는 소주제로 수저론을 다룬다. 타고날 때부터의 집안환경이 고착화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친절히 설명한다. 말 그대로 현실을 설명하는 선에서 소주제가 마무리된다.


그럼 대체 “선택하는 부자, 끌려가는 가난”이란 소주제는 왜 썼을까?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앞에서 주장해놓고, 뒤에서는 한국 사회의 수저론과 계층고착화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달리 세습형 부자가 많다는 부연 설명까지 달아 준다. 그래서 이 두 소주제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희망 섞인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냉혹할 정도의 현실 인식도 아닌 어중간한 스탠스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이 책을 덮은 소주제는 “가난은 창작을 귀찮게 해”라는 부분이다. 저자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하며, 계약직과 비정규직을 절대적 빈곤층으로, 정규직을 상대적 빈곤층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계약직과 비정규직은 삶의 여유가 없고 꿈이 없으니 창의성은 고사하고 질 높은 성과도 찾기 어렵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인 정규직도 가정이 생기고 가장이 되면 씀씀이가 커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걸 감당하기 어렵다. 남들이 다 살 수 있는 걸 나만 못 산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에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면서 ‘인간은 모두 빈곤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아예 정의부터 틀렸다. 계약직과 비정규직을 통합해 ‘절대적 빈곤’으로 정의하려 한 시도부터가 잘못되었다. 계약직도 계약직 나름이다. 계약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는 공통점뿐, 연봉의 액수도 천차만별이고 업무에 요구하는 능력도, 계약에 따른 처우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을 전부 통칭해 ‘삶의 여유가 없고 질 높은 성과도 없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용기가 놀라울 뿐이다.


정규직 논리도 한참 잘못되었지만, 가정이 생기고 가장이 되면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일반화에도 문제가 있다.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결혼도 안 하고 자녀도 안 낳으려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집안 형편이 어려울수록 자녀 교육비를 줄인다’는 사실도 보였다. 그러면 ‘가정이 생기고 가장이 되면 씀씀이가 커지고, 남들이 다 사는 걸 나만 못 산다는 좌절감을 느낀다’는 논리는 이 책 어디에서 유추할 수 있을까. 가정이 생기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도 안 하려 하고, 남들이 다 쓰는 교육비 나만 안 쓰면 내 자녀가 뒤처질까봐 교육비를 줄이지 못하는 게 교육열의 핵심 아닌가. 자기 책의 근거로 자기 책의 논리가 반박당하면, 대체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라리 이 책의 모든 소주제들을 토막내어 블로그에 실었으면, 이렇게 원리원칙 없는 책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그때 보이는 사회 현상마다 적절한 근거 없이 그럴듯하게 설명만 풀어놓았을 뿐,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 그게 이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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