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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독서

다시, 책은 도끼다

inspirit941 2018. 1. 1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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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의 소화를 돕는 훌륭한 소화제 같은 책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인문학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박웅현님 발(發) 이정표




170113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힘은 ‘새로운 시선’이다. 책을 통해 이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방향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성찰이 담겨 있는 책이라면 더욱 그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여덟 단어’에 이어 박웅현님의 또 다른 작품을 읽었다. 오랜 세월 성찰과 사색으로 빚어진 하나의 매끈한 도자기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부터 괴테의 파우스트까지, 좋은 작가의 명작을 어떻게 하면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저자의 친절한 안내가 함께한다.




두 번째 장, ‘관찰과 사유의 힘’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박웅현님은 ‘곽재구의 포구 기행’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 관찰력의 사례를 몇 가지 든다. 시골 골목길의 풍경을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뻔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로 묘사한다. 포구 근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이 좋았다. 미소짓게 만드는 따뜻한 느낌의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도 좋았다. 나는 보통 냉철한 시선으로 대상을 분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글을 주로 읽어 왔었다. 날카로운 분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포용을 위해서 관찰하는 시선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따뜻한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고 봤다. 같은 포구를 걸어도 바쁜 걸음으로 시선을 옮긴다면 곽재구 씨가 보았던 시골 풍경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할 것이다. 특히 물리적으로 속도가 빠른 것보다는, 마음가짐에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지만, 최고의 경관을 앞에 둔다 해도 자기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박웅현님은 논의를 마음에 여유가 있으려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간다. 이미 지나갔기에 바꿀 수 없는 과거,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 미래는 고민하거나 신경을 쓴다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겨야 한다. 주어진 현재, 매일매일의 시간을 미련 갖지 않게 사는 것. 마음의 여유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조함과 성급함의 극복’이 최대 과제다. 심경이 초조할수록, 성급함이 커질수록 서두르게 된다. 보고 듣고 느끼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서둘러서 얻지 못하고, 여유로워서 더 많이 얻는’ 사례로 나는 여행을 꼽고 싶다. 유명 관광지 몇 곳을 빠르게 사진만 찍고 돌아온 사람과, 여행지 한 곳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온 사람. 관광지를 빠르게 찍고 온 사람은 명소 앞에 선 자신의 모습 몇 장 담긴 사진만이 남는다. 여유롭게 여행지를 둘러본 사람은 여행지 사람들의 표정, 걸음걸이, 북적이는 시장, 버스 속 소음, 기찻길 풍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결과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여정 그 자체라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도 닿아 있다. 여정을 즐긴 사람, 여행에서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느낀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다.


박웅현님의 ‘현재’ 예찬은 니코르 카잔카스키의 기행문 소개에서 빛을 발한다. 카잔카스키는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재의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인생을 사는 방법을 본받고 싶은 사람이라고. ‘온몸이 촉수인 삶’같다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럽다고 했다. 같은 세상을 보며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건, 같은 현재를 보고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카잔카스키의 모습을 잘 드러낸 기행문 구절이 하나 있었다. ‘영국 기행’의 일부인데, 영국 여행을 하던 중 니체의 생일을 맞자, 외국 여행을 하고 있지만 하루종일 니체 생각을 하며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자주 오기 힘든 영국으로 여행을 왔다 해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학자의 생일이 되는 날엔 그 생각에만 집중한다. 여행의 하루를 영국 공원 벤치에서 온종일 니체 생각을 하는 데 쏟는다.
  
여행지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보고 들을 기회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 그 순간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여행지의 새로움을 접하는 게 아닐 때도 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못 갈 곳이라고 해도,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한 모습이다. 그만큼 카잔카스키에게는 지금 ‘나’가 가장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인문학의 핵심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책을 읽고, 공감하고, 느낀 내용을 삶에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학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책은 다른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느낀 바는 어떠한지 보고, 내 삶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줄 수 있는 매개다. 많은 책과 성찰에서 빚어진 박웅현님이 전하는, 당신의 관점으로 소화한 인문학 서적의 지혜를 접할 수 있다. 양서(良書)를 추천받는 건 덤이다.


좋은 책과 좋은 책의 해석을 더해, 독자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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