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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

드로잉의 효과를 생각하다 - Drawing Essay

inspirit941 2017. 10. 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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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5 전시회를 다녀온 내용.




“Drawing Class <꼬망딸레부 하우드로잉>은 ‘여행’에 이어 ‘일상’을 테마로 두 번째 전시 <Drawing Essay 展>을 기획하였습니다. 일상 속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예술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즐기기 바라는 마음으로 소규모 드로잉 전시를 열었습니다.”


“일상 속 8가지 주제별 4인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 언어인 드로잉을 감상해보세요. 마인드 이미지 맵, 내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 동네 안내서, 어릴 적 모습, 나를 위한 음식, 내가 꿈꾸는 삶, 일상 풍경, 약사가 되어 만드는 드로잉 처방 등 다양한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4인 각각의 다양한 일상 드로잉 속에서 나만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기를 기대합니다.”


“소소한 일상도 여행처럼 특별해지는 시간을 만나보세요. 다양한 일상 드로잉으로 생각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일상’을 정의하는 건 어렵다. 누구든 일상을 살아가지만, 누구라도 같은 일상을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상’ 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느낌은 있다. 누구에게는 활기차고 즐거움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당신에게 일상이란? 이라는 질문에는 누구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일상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는 선뜻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누구나 생각할 법한 공통점이 있기에 ‘일상’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고 통용되지만, 단어를 관통하는 정서와 느낌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기엔 일상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매일 마주치기 때문에 무심할 뿐, 조금만 다르게 접근하면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다르게 접근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에게 일상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겐 일상이지만 나에겐 생경한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을 스케치한 네 명의 작가와 작품을 만나러 선유도역으로 향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전혀 모르기에 더욱 가봐야 했다. 나와는 다른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사는 사람의 시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드로잉이라는 표현 방법에서도 내가 생각한 적 없던 시도를 보았다면, 그것도 아주 좋은 수확이다.




이게 전부다. 아주 작은 전시회였다.



들어서자마자 꽤 흥미로운 것들이 놓여 있었다. Drawing Prescription이라고, 작가 네 명이 
일상에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상황’과 ‘처방전’을 명함 크기로 만들어 뒀다. 작가 한 명당 세 개의 처방전이었다.






독특했던 건, 네 명의 작가 중 세 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해결책을 제시한 한 명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해결방안’을 적었을 뿐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발레를 하라거나, 주 2회 칼퇴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등. 불특정 다수가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칼퇴근.) 대신,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소소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파랑새 증후군, 월요병, 착한 아이 증후군, 습관성 만성피로, 스마트폰 중독증.




공감될 만한 것들을 몇 개 기념으로 가져왔다. 친구에게도 나눠주면서 전시회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중독증이나 만성피로처럼 의학적 해결책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파랑새 증후군이나 착한 아이 증후군, 월요병처럼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병도 있는 법이다. 드로잉이라는 방법이 후자에 더 잘 맞는 표현방식인 듯했다. 엉성하기도 하고 삐뚤빼뚤하다. 서툰 솜씨로 ‘이런 것들이 너를 힘들게 했을 거야’ 라는 듯, 표현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래서 더 진심같다. 드로잉, 누군가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꽤 독특한 표현 방법이다.


명함 크기의 처방전을 보고 느낀 다른 생각.

어떤 전시회나 행사를 열 때, 주제와 관련 있는 어떤 내용을 명함 크기로 만들어서 기념품처럼 제공해도 좋겠다. 
친구에게 건네주면서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던 부분이 ‘동네 안내서’였다. 네 명의 작가가 각자 자신이 사는 동네를 그림으로 그려 표현한 것이다. 'Village Guide'라는 소제목으로 전시돼 있지만, ‘내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관점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먼저, 흔히 ‘Village Guide’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지도 형태의 그림이다. 이분은 꽤나 사실적으로 표현하셨다. 지하철역, 강, 잘 구획된 길들과 유명한 가게들이 배치돼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고, 우리 집에서 몇 블록 걸어가야 맥도날드를 갈 수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Guide'에 충실한 형태다.



반면 이런 그림도 있었다. 지도 같기는 한데, 앞의 지도와 비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현격히 적다. 동서남북도 없고, 기준으로 볼 만한 위치도 없다. 그냥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나열돼 있다.


이분이 생각한 ‘Village Guide’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하다 'Boxing'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복싱 체육관은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처럼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게 아니니까. 이분은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을 ‘나’를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내가 자주 들르는 곳, 자주 가는 곳이 중요한 것일 뿐, 거길 가는 방법이나 방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동서남북 개념을 모르고 위치감각이 없어서 설명은 못해도, 올리브영이나 산, 복싱체육관처럼 내가 자주 가는 곳의 길은 잘 안다. 그러니 굳이 현실에 가깝게 지도를 그릴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주변 공간을 '공간' 그대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주변 공간에 관심없이 필요한 '목적지'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Village Guide에서 제시한 또 다른 작품. 이 그림은 이해를 포기했다. 이게... 동네 안내서인가?




'Daily Life'라는 주제로는, 사진 위에 투명한 필름을 덧대고 그 위에 드로잉을 칠해 두었다. 글쎄, 주제는 Daily Life이지만 내가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 'Ideal Life'에 가까웠다. 일터에서 벗어나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싶은 듯한데, 이것이 Daily life라면 한국에서는 축복받은 삶 아닐까... 

사실 세 개의 사진 모두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찍을 수 있는 사진이다. 동네 주변의 산책로, 일하는 컴퓨터 책상 앞, 퇴근 후 술집의 풍경이다. 이 풍경과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 이상적인 삶이 완전히 격리된 건 아니었다. 사진에 필름을 덧대고 그림을 칠한 것만으로도 꿈꾸는 삶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으니까.



숲이 있는 들판에서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나온다거나



그림 보고 좀 고민했다. 휴가지에서도 컴퓨터를 들여다본다는 걸까, 아니면 휴가계획을 짜고 있는 걸까..



볕 좋고 시원한 바닷가 근처에서 술 한잔 한다거나.


사진 위에 필름을 덧대고 그림을 그려서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발상도 좋았다. 일상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어떤 것 중 하나만 바뀌어도, 풍경을 일상에서 이상으로 바꿔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 사진 세 개로 봤을 땐, 일상에서 '현재 있는 장소를 바꾸는 것' 과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이상으로 바뀌는 모양이다.


네 명의 작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건 '여행'에 대한 동경이었던 것 같다. 일상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일같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와 다른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여행에서 기대하는 건 정확히 뭘까?



드로잉이라는 표현 방법의 효과를 깨닫기도 하고, 일상과 이상의 경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일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드로잉 전시의 첫 번째 주제가 '여행' 이었다고 하는데, 첫 번째 전시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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