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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카카오 Ground X Social-Impact Summit

inspirit941 2018. 6. 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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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8



카카오 그라운드X의 비전, 비즈니스 목표, 원하는 사업구성이 무엇인지 귀띔해 준 서밋.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방법 / 공공사업을 고민하고자 한 의지가 보임.
그라운드X가 취할 수 있는 큰 전략(Strategy) 중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구체적인 전술(tactic)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느낌.

cf.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사회문제가 못이고 블록체인 기술이 망치라면, 
못이 있어야 망치가 의미가 있기 마련인데 혹시 망치를 들고 못을 찾아다니는 형태로 끝나지는 않을지 고민이 필요해 보임.


회사 인턴일을 하면서 찾아다닌 밋업이나 서밋, 강연회는 참 많았는데, 블록체인 쪽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목적을 지닌 모임이 얼마 없었다.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내실이 없는 밋업이 너무 많았고, 심할 때는 스캠같은 회사의 발표를 들어야만 했다. 가급적이면 이름이 알려진 회사나 프로젝트가 있는 모임을 찾아듣고는 했지만, 매번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카카오 그라운드X 블록체인 서밋도 반신반의하면서 갔다. 카카오 그라운드X라는 이름을 내걸고 하는 서밋이지만, 대형 업체 이름만 팔고 실제로는 아무 내용 없는 모임을 겪었던 적이 있어서였다.
  
서밋 구성과 발표내용을 듣고 나서는 정확히 반반이었다. 
기대 이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 이하도 아니었다. 아직 블록체인 업계 자체가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발 블록체인 플랫폼 주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목표는 설정했고 방향도 잡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뻗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정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먼저 카카오 그라운드X CEO 한재선 대표가 나섰다. 블록체인 기술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그라운드X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과 사업개요를 소개했다. 스스로 말하길 ‘외부활동으로는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카카오 그라운드X는 ‘카카오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회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플랫폼을 키울 것인지는 처음 알았다.
  
카카오 그라운드X는 ‘소셜 임팩트’라는 용어를 회사의 기치로 내걸었다.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자 한다.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글로벌 사업자로 도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카카오’라는 이름이 회사 앞에 붙지만, 그라운드X가 지향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카카오 회사가 중심인 중앙집권형 플랫폼이 아니라 탈중앙화 형태라는 점도 짚고 넘어갔다. 그라운드X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여러 사용자가 분산화된 오너십을 소유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라운드X 플랫폼의 Governance. 카카오가 주인이 아니라 참여자가 주인이며, 거버넌스의 탈중앙화를 주장했다.








그 다음으로는 ‘베어베터’라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가장 규모가 큰 기업의 CEO인 김정호 대표였다. 블록체인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들을 만한 내용이 없었다. 강연하면서 스스로 ‘개인적으로 투자해서 이익은 봤으나 사업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블록체인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었다. 대신 ‘비즈니스’와 ‘사업화’의 감은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강의에서 느꼈다. 본인이 운영하는 베어베터를 포함한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는 방법을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돈 냄새는 잘 맡는 사람이구나’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다음 발표는 그라운드X 소셜임팩트 담당 이종건 박사님이었다. UN 사무총장 직속 ‘글로벌 펄스’라는 곳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담당하셨던 분이다. UN에서 일했던 분답게 ‘사회적 문제’를 UN의 자료에서 찾았다.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17개 과제였는데, 기아문제나 보건, 의료 등의 거시적인 흐름을 짚었다.





그 후 ‘공공분야의 블록체인 적용’을 주제로 서울디지털재단에서 김성진 실장님이 나와 강의를 진행했다. 서울시에서 공공분야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고자 하는 10개 분야 - 재난방재, 대기/환경, 경찰, 식품의약안전, 보건의료, 주택인프라, 창업, 채용, 노동/수당, 세정 -를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공개했다.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평가한 ‘채용’은 조금 더 구체적인 로드맵을 그려놓은 상태였다.
즉 서울시에서도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의사가 있으며, 나름의 기준으로 10대 과제를 선정해 수행할 방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코오롱에코원 이수영 대표님이 CARBONBLOC이라는, 블록체인 기반 환경 플랫폼 구상을 설명했다. 스팀잇의 보상시스템을 차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한 만큼 토큰으로 보상받는 형태의 플랫폼이었다. 
  
물론 현실에 구현하기에는 강연에서 언급했듯 여러 가지 장벽이 남아 있다. 예컨대 토큰을 어떻게 활용하게 할 것인가, 친환경 물품의 개수가 적은 현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전기 절약의 경우 가정용 전기 단가가 워낙 낮아서 절약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가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든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시장이 성숙해 간다고 믿는다. 그라운드X에게도 성공이든 실패든 좋은 경험일 거라 생각하기에 응원하고 싶었다.





그라운드X의 발표 슬라이드 일부. Social Impact를 특히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플랫폼 후발주자로서 그라운드X가 갖고 있는 고민이 엿보였던 서밋이었다. 먼저 카카오 그라운드X 발표에서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익' 관련된 언급이 일절 없었다. ‘사회적 문제 해결, 사람에게 가치 제공’을 내세웠고, 뒤에 나선 발표도 하나같이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보통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성을 어필하기 마련이다.
  
후발주자로서 선두주자 - 이미 자리잡아가는 중인 퍼블릭 / 프라이빗 블록체인 플랫폼들 - 와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지, 그리고 블록체인 업계에서 아직 제대로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 딱히 없다 보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한 결과물이 ‘소셜임팩트’로 보였다. 
 




블록체인 플랫폼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플랫폼 비즈니스는 대부분 ‘네트워크효과’에 기반해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일단 사람을 끌어모으고, 사람이 모일수록 모두가 더 큰 효용을 누리게 만든 다음 그 안에서 수익모델을 찾아낸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직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명확한 수익모델을 갖춘 플랫폼이나 서비스가 마땅치 않으니, 우선 수익을 논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치를 느낄 만한 것을 제공하겠다는 선택으로 비춰졌다.
  
수익보다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우선하겠다는 Social Impact를 메인 테마로 잡았기 때문에, 발표 매개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사업분야’ 서울디지털재단, 환경에너지 기업인 ‘코오롱에코원’, 그리고 UN에서 사회적 문제 해결을 담당한 박사님의 Sustainable Development 과제가 발표 내용이었다고 추론했다. 수익성을 우선순위로 놓는 게 아니라, 해결하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문제들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하지만 이 서밋의 가장 큰 아쉬움은 ‘그래서 그라운드X는 어떤 사회문제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하고 싶은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라운드X CEO의 발표에서도 ‘Social Problem을 해결하는 데 블록체인이 아주 Fit하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사회문제에 블록체인이 Fit한지, 블록체인의 어떤 성격이 Fit하게 만드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후 발표한 베어베터나 서울디지털재단의 경우 블록체인 기술이나 플랫폼의 이해도가 높지 못한 모습이었다. 베어베터는 아예 ‘현재 사업과 블록체인은 관련이 없다’고 못박았다. 서울디지털재단도 10대 과제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채용 관련해서 이런 로드맵을 그렸다 정도 수준이었다. 10대 과제의 선정기준이 무엇인지, 그 중 채용이 첫 번째로 블록체인을 이용한 해결과제로 선정된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코오롱에코원에서 블록체인 생태계를 제시했지만, 카카오 그라운드X가 추구하는 목적과 부합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사실 토큰을 활용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비즈니스 모델 대부분이 검증받지 못했기에 스캠 취급을 받는 게 크다)
  
그리고 UN에서 근무했고 현재 Ground X Director인 이종건 박사님의 발표에서 꽤 중요한 시사점이 있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 이전엔 모바일 등등. 어떤 기술을 가지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시점은 보통 ‘산업이 성숙해진 이후’였다.”라는 내용이었다. 박사님은 ‘물론 블록체인은 과거 기술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지만…’이라고 이야기했으나, 핵심을 찌른 내용은 앞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라운드X의 비전인 소셜임팩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일지도 모른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본 건 아닐까. 서밋에 섭외한 사회적 기업들조차도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비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즉 그라운드X는 나름대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방향을 Social Impact라고 정의했으나, 본인들이 제시하는 비전에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섭외하는 데엔 실패한 것 같았다. 최소한 이 서밋에서는 말이다. 발표 순서를 보면 '블록체인 기술과 의의 를 Ground X CEO 강연으로 설명' ->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블록체인 시스템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비전을 보여주고 토론하는 그림을 그렸던 듯 하지만, '사회적 기업의 블록체인 시스템 적용'에서 막힌 느낌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비전이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아직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도 춘추전국시대인 듯하다. 이를테면 EOS는 거대한 연합국가를 세우기 위해 지방세력을 규합하는 느낌이고, 이더리움은 비탈릭을 중심으로 하나의 왕국을 세웠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도 하이퍼레저나 R3가 세력을 기르는 중이다. 이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도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난립할 것이고 난립 중이다. 그리고 교통정리도 곧 진행되지 않을까. 살아남는 자가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할 때까지. 카카오 그라운드X도 이 바닥에 뛰어들었고, 앞으로 치열한 경쟁에 맞닥뜨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라운드X의 성장을,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성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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