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레볼루션
예술, 미술 영역에서는 통념을 뒤집는 예술 사조로 각광받고 있고, 게임 업계에서 P2E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다는 걸 소개한다. 그게 전부다.
탈중앙화와 창작자 권한의 강화를 NFT가 가져올 중요한 미래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예술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NFT 기반 생태계가 미래에 각광받을 만한 이유는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예술이나 수집품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NFT 토큰이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상세히 볼 수 있지만, NFT 토큰을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부적절한 책이다. 내용이 없다.
예술계, 현대미술의 예술 사조에서는 NFT와 블록체인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고 볼 수 있을 만했다. 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진품 여부 검증'과 ‘거래 과정에서의 불편함'을 블록체인의 불가역성과 스마트 컨트랙트로 해결했다.
새로운 시선과 도전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계에는 ‘이천 년이 넘는 역사에서 이미 누군가가 해본 도전 아니야?’ 라는 난관을 해결했다. 블록체인 위에서 NFT 토큰을 매개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세계관 자체가 새로 만들어졌고, 이 분야에서 창작자는 무엇을 하든 새로운 시도와 도전, 창의성의 발현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 작품이건 미디어 아트건, 작품을 만들고 NFT화하면 아트 갤러리나 거대 레이블 없이도 예술품 소비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직접 예술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고, 작품을 재판매할 때마다 자신에게 수수료가 들어오도록 스마트 컨트랙트로 설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시장 참여자가 많아지면서 창작자 / 소비자, 제3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을 ‘메타버스’ 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들이 온라인에서 만나는 공간에도 토큰 기반의 소유권을 부여해서 사고팔 수 있고, 공간 어딘가에 광고판을 만들어서 광고 구좌를 판매할 수도 있는 식의 부차적인 경제생태계도 나타나고 있다. 디센트럴랜드 등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저서 작성 시점으로 꽤 유명한 NFT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에 책의 절반 정도가 할애되어 있는데, NFT 쪽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이거나 초보 NFT 토큰 콜렉터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 이들의 인터뷰를 글로 옮기는 건 분량만 많고 내용도 겹치므로, 진심으로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반면, NFT 혁명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저자의 전망에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이다. 당장 NFT 토큰의 활용예시로 꼽히는 게임 분야의 Pay to Earn 모델이 블록체인의 불가역성 / 탈중앙화 철학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이템의 소유권 이전 / 토큰 시장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 정도만 이야기했다.
게임을 구성하는 아이템을 ‘개발사가 개발 -> 사용자가 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개발사에게서 소유권을 이전받고, 활용하거나 처분하는 등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것이 Pay to Earn (P2E)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는 게임 아이템과 함께 NFT 토큰을 생성하고, 게임 내 재화로 활용할 수 있으며 토큰시장에서 현금화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맞춰주면 된다.
이 과정에서 토큰의 발행량, 공급량은 전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에게 달려 있다. 게임 아이템을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속도로 공급해야 게임 내 경제를 유지하고 원활한 게임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명분도 있다. 토큰이 시장에서 현실 재화와 교환되는 한 게임사는 자신이 발행할 수 있는 토큰을 언제든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으며, 해당 토큰의 시장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독점공급자 지위를 갖게 된다. 즉 “탈중앙화" 와는 거리가 먼, 공급자가 소위 말해 ‘현실 돈복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지난 2022년 2월 게임회사 위메이드가 P2E 모델에서 활용하는 토큰을 시장에 대량으로 매각한 사례도 있다. 물론 토큰을 발행할 때 ‘백서'에 재화 공급량, 활용방향 등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2018년 ICO 사태 때 백서는 미사여구 늘어놓은 소설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제도적 강제력도 없고, 접근성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NFT 토큰 기반 경제의 핵심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참여자들의 믿음이 가격 책정의 근거이자 논리'라는 것이었다. 경제학에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효용'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NFT 토큰을 활용하는 예술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철학을 담아, 만들고 싶은 만큼 토큰 작품을 발행한다. 예술가의 철학을 공감하거나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이더리움 같은 교환의 매개가 될 수 있는 토큰을 지불해서 NFT 토큰을 구매한다. 예술가는 교환의 대가로 받은 토큰을 마켓에 팔아서 현금화하거나,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NFT 작품의 가격에 ‘효용가치 또는 사용가치'는 큰 의미가 없다. 나이키 한정판 신발을 줄서서 구매한 사람이 그 신발을 신고 다니려고 산 게 아닌 것처럼.
(반대로, 내가 만든 토큰이 높은 가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시장참여자가 믿게끔 만들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8년에는 ICO로 한몫 챙길 생각하는 사기꾼이 많았나 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NFT 토큰의 거래액, 시장규모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유명 화가의 작품이 비싸게 팔렸다고 할 때,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효용가치라면 재판매 차익실현을 제외했을 때 ‘재현 불가능한 원본이라는 가치,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는 이름값, 작품을 전시했을 때 찾아올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수익, 수집가의 수집 욕구'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중 일반인에게 그나마 계산이 가능하고 납득할 만한 수치는 ‘전시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수익' 정도일 것이다. 나머지는 (내가 가치평가에 참여한 적 없는) 미술계 시장에서의 가치평가와 개인의 수집욕구가 만들어낸 숫자일 텐데, 이 숫자를 설명하는 건 치킨 한 마리의 가격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효용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욕망이 만들어낸 가격인 셈이다.
NFT 시장에서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고가 미술품 경매시장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더 많다. 블록체인 기술로 원본의 진위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애초부터 잘못된 데이터가 원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오라클 이슈'는 블록체인이 각광받기 시작할 때부터 제기된 문제 중 하나였다. 예술가의 개인 작품에서는 오라클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오프체인(현실)과 전혀 다른 데이터를 온체인에 기록할 수도 있다. 이 데이터는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교환의 매개로 사용되는 토큰의 가치는 누가 보증하는가? NFT에서는 자발적인 시장참여자의 활동이 가치를 보증한다고 설명하지만, 상품과 서비스 ‘효용’의 논리로 살아온 일반인에게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역사도 짧은데 2018년 대규모 ICO 사태, 오프체인 경제이슈에 반응하며 극한의 가격변동성을 보이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역사를 목격한 일반인들에게는 ‘자발적인 시장참여자'가 만들어낸 가치만으로는 토큰의 가격과 가치안정성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특히 2018년 무렵 ‘시장참여자가 만드는 가치'라며 커뮤니티 토큰의 성격으로 등장한 이오스(EOS), 스팀(STEEM)은 2019년 들어 토큰의 가격이 급락하자 시장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손절'하듯 토큰을 팔아치우고 커뮤니티를 떠났었다. 당연히 토큰의 가치는 더 급락했다.
조금 역사적으로 들어가보면, 사회나 조직 규모가 커질 경우 인간은 “중앙화된 조직” - 책임져야 할 대상을 만들어서 권한을 위임해왔다. 중앙화된 조직이 권력을 행사하고, 가치 유지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예컨대 화폐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오랜 시간 금본위제, 은본위제 등 ‘국가가 발행한 화폐의 가치'를 금과 은 등 ‘인간이라면 가치를 부여할 만한 광물'에 부여했다. 단적으로, 브레턴우즈 체제 (금본위제 + 미 달러) 를 폐지하고 양적완화를 거의 20년 가까이 해온 미 달러의 가치가 아직도 유지되는 이유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에 갖는 위상과 영향력을 전세계가 아직까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NFT 토큰은 ‘탈중앙화’라는 철학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합의한 가치로 유지되고 있다. 이들이 떠나면 투기세력도 돈을 넣을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NFT 생태계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자발적으로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 이들이 떠나면 가치 보증을 해줄 대상이 없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나는 DAO라는 "탈중앙화된 조직"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별로 신뢰하지 못하겠으며, STEEM의 대규모 이탈이나 EOS BP 사례에서 보듯 DAO의 취약성만 입증됐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기’ 내지는 ‘도박' 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가치 보증을 탈중앙화된 개인의 집합이 해준다는 건, 아무도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에서는 NFT가 정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2018년 블록체인을 공부했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시장지형도를 다시금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차라리 이 책이 비즈니스 블록체인 공부에는 더 이해가 잘 됐었던 기억이 난다. 4년 전 책인데.
https://inspirit941.tistory.com/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