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해서웨이의 재탄생
섬유공장을 워렌 버핏이 인수한 뒤, 섬유산업에 투자하던 자본을 어떤 식으로 재배치하여 지금의 복리 기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1955년 ~ 1985년의 주주서한과 재무제표로 되짚어보는 책.
재무제표의 용어나 표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버크셔가 어떤 시점에 무엇을 보고 어떤 기업에 자본을 투자했는지 톺아볼 수 있다.
경제적 해자, 플로트(float), 자본 배분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숫자로 볼 수 있는 참고서. 초보자를 위한 해설서는 아니다.
워렌 버핏이나 버크셔 해서웨이를 자세히 모르는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이 책은 워렌 버핏의 투자철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버크셔가 복리 기계로 전환되기까지 어떤 선택을 거쳐왔는지 주주서한과 재무제표를 곁들여 설명하는 참고서로 봐야 한다.
처음 읽은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얼만큼 소화해냈는지를 기록했다.
섬유공장의 인수 (~1965년)
버크셔는 원래 섬유공장을 운영하던 회사였다. 버크셔의 섬유공장은, 당시에도 섬유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은 인건비에서 일본기업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버크셔는 이익이 나지 않는 공장을 청산하고, 청산대금을 장비 현대화와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회사가 영위하던 사업은 전망이 어두웠고 흑자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보유 자산 대비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주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버핏은 주당 약 $7로 1962년에 버크셔 주식을 처음으로 확보했고, 버크셔의 자사주 매입 제시에 응하지 않은 채 지분을 계속 확보해서 결국 지배권을 얻었다.
재미있는 점은, 버핏이 처음 버크셔 지분을 매수한 가격은 약 $7이고 버크셔에서 자사주 매입으로 제안한 가격은 약 $11.375였다고 한다. 여기서 약 50% 수익을 얻으면서 주식을 매도하고, 다른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었다고. 그러나 버핏은 최종적으로 주당 $14까지 비용을 지불하며 지배권을 확보했고, 이 판단을 ‘최악의 투자 결정'이었다고 회상한다.
전환 (1967 ~ 1969년)
버핏이 버크셔를 인수한 이후 취한 행동은 크게 세 가지였다.
- 섬유산업에 투하되던 자본 비중을 줄인다.
- 모든 회사채를 상환해서 무차입 기업이 된다.
- 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늘린다.
1967년, 보험회사 ‘내셔널 인뎀너티'를 인수하고, 보험업의 float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보험업은 고객에게 보험료를 먼저 받고, 보험금을 나중에 지급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이 시차를 활용해서 계약자가 낸 보험금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float (책임준비금) 이라고 한다. float를 활용하면, 은행대출과 같은 부채 없이도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자본효율적인 기업 운영이 가능했다.
하고 많은 보험회사 중에 내셔널 인뎀너티를 인수한 이유는, 당시 보험사가 보유한 float인 $1700만 ~ 1900만을 활용해 1.8% 투자수익만 내도 영업권(인수가격 - 유형자산)으로 지불한 비용에서 연 15% 투자수익을 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보험 본업에서 영업손실이 크게 나는 것만 아니라면 성공적인 인수였다는 것.
일리노이 내셔널뱅크 (은행) 를 인수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은행도 고객의 금액 예치시점과 환수시점의 시차를 활용해서 적은 비용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업의 float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수 전에도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하고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던 견조한 기업이었다. 또한 일리노이주의 엄격한 은행법 때문에 은행은 단 하나의 지점만 운영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초과이익이 나도 재투자할 구석이 마땅치 않았다. 따라서 이익 상당수를 모회사에 배당으로 지급했고, 이는 버크셔가 자회사의 이익을 모회사로 이동시켜 더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은행업과 보험업은 버크셔가 재투자할 현금을 창출해주고, 버크셔의 재투자는 버크셔가 더 많은 현금을 창출하는 동력이 된다. 이 시점에서도 이미 멋진 복리 기계가 완성되었다고.
확장 (1970년대 ~ 80년대)
투자하는 기업 분야를 다각화해서 지주회사의 안정성을 높이던 시기. ‘기회에 대응해서 자본조달구조를 결정하는 버크셔의 투자방식이 일관적으로 드러난다’ 는 표현이 있던데, 나는 이 문장을 ‘필요하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부채를 일으켜서 투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나, 절대 무리하지는 않았다' 라고 이해했다.
가이코: 버핏이 20살 무렵부터 투자했던, 비용구조가 경쟁우위의 원천이었던 보험사.
대리점이 아니라 우편으로 고객에게 직접 영업하는 방식이어서, 사업운영에 필요한 간접비용이 압도적으로 낮았다. 대다수 보험사는 한 번 구축한 대리점 영업망을 버리기 힘들었고, 신규 진입자는 가이코가 오랜 세월 구축한 브랜드가치와 우편 영업방식의 효율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1970년대에 큰 영업손실로 위기를 겪었으나, 버핏의 투자와 재보험 제공으로 자금부담을 덜어낸 뒤 성장보다 수익성에 집중하며 위기를 넘겼다.
이 부분은 회계와 금융법 관련 배경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가이코의 경우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사내유보했는데, 모회사에서 이익을 배당했다면 버크셔의 보고순이익은 증가했지만 배당이익에 소득세를 납부해야 했을 것이다. 반면, 가이코가 배당하지 않을 경우 버크셔는 납부할 세금이 없다.
어차피 가이코는 앞으로도 성장할 가능성이 큰 훌륭한 기업이었으므로, 지금의 유보이익은 더 높은 비율로 복리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회계 표시방식은 버크셔의 내재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이퍼사이드 리테일링 컴퍼니: 볼티모어 소재 백화점 호크실드콘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
성장률이 높진 않았지만, 창출한 현금을 세금부담 없이 모회사에 배당해서 버핏이 재투자할 수 있었던 회사. 3년간 호크실드콘을 보유한 뒤, 손익분기점에 재매각. 이후 호크실드콘은 1984년 폐업.
블루칩스탬프: 경품권 판매사업.
유통사에 경품권을 판매하면, 유통사가 고객에게 경품권을 발행한다. 고객은 유통사 매장에서 경품원을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블루칩은, 고객이 유통사 매장에서 상품을 교환할 때 비용을 부담한다.
은행, 보험업과 마찬가지로 ‘먼저 돈을 받고 나중에 비용이 발생하는’ 시차가 있는 비즈니스였기에, 훌륭한 float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매출총이익률이나 순이익률이 낮아도, 자기자본이익률이 굉장히 높은 구조. 경품권을 받은 고객이 교환하지 않는 비율도 역사적으로 꾸준했기 때문에, 뱅크런과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굉장히 낮았다고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float와 초과유동성을 활용해 “씨즈캔디"를 비롯한 여러 기업을 인수하며 지주회사로 변모한다.
씨즈캔디: 수십년의 역사와 높은 품질의 제품으로 잘 알려진 사탕가게.
인수 전에도 재무제표상 이자부 부채가 없고 현금 $990만 보유하고 있던 기업. 영업활동에 큰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 구조였고, 임차 매장으로 운영했기에 매장에 묶인 자산 규모도 적었다. 현금을 지불하고 바로 상품을 구매하는 구조였으므로 매출채권도 없었다.
즉 꾸준히 현금창출이 가능한 회사인데, 운영에 필요한 현금보유가 적어도 괜찮은 회사였다. 따라서 초과이익을 재투자하거나 주주환원하기 쉬운 구조였다. 인수 프리미엄은 지불했지만, 씨즈캔디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야만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씨즈캔디는 인수 이후 10년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홈런을 쳐버렸는데, 이는 판매가 인상 때문이었다.
판매량이 늘어도 회사는 이익을 보겠지만, 판매량이 늘면 재고자산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직원이 필요하다면 생산비도 증가할 수 있다. 신규 매장을 여는 것도 좋지만, 유형자산 투자와 신규 고용이 필요하다. 즉 운전자산과 유형자산에 자금이 묶이고 원천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반면 판매가격의 증가는, 회계이익 증가뿐 아니라 실제 주주의 현금흐름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씨즈캔디는 수십 년의 고품질로 쌓인 브랜드가치 덕분에 이게 가능했다고 한다.
버펄로 이브닝 뉴스
70년대 후반, 버펄로 지역의 발행부수가 경쟁사의 2배였던 선두 일간지. 이 당시 신문사는 지금의 플랫폼 기업처럼 네트워크 효과를 보는 업종이었다.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사에 더 많은 광고가 실리고, 소비자는 더 유용한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재원이 풍부해지면 취재 예산을 더 많이 할당해서 수준 높은 기사를 보도할 수 있었다. 인수 프리미엄은 지불했지만, 수익성 잠재력은 충분했다.
버크셔는 인수 이후, 인쇄공장 구매처를 줄여서 대량주문 할인혜택을 받는 식으로 비용을 낮추고, 공장파업에 대비하기 위해 인쇄지 저장 용량을 확보했다. 일요판 신문을 발행했다가 반독점 이슈에 휘말려서 한동안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높은 수익성을 달성했음.
웨스코파이낸셜: 저축대부사업자 (Saving & Loan)
70년대 초반에 지분 인수. 당시 규제당국은 미국 내 주택소유를 장려하기 위해, 저축대부사업자는 시중 이자보다 0.5%p 높은 이자를 지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금자 유치 면에서 은행보다 유리했다. float 창출 방식은 보험사 / 은행과 동일한 구조.
단, 저축대부업은 요구불예금과 같은 단기자금으로 장기 모기지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에, 자본조달 위험과 이자율 위험을 둘다 관리해야 했다. 예금과 대출의 듀레이션이 일치해야만 이자수익과 이자비용이 적절히 상쇄되는 구조이고, 금리가 급등할 경우 고객에 지불할 이자비용이 장기모기지 이자수익보다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float를 활용해서 새로운 산업에 속한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한 기업이 창출한 이익으로 더 많은 기업에 투자하는 복리 기계 대열에 합류했다.
이외에도 다리 통행료를 받던 회사 (인터내셔널 브리지), 정밀금속이나 제강제품 도매공급업체 (프리시전 스틸 웨어하우스), 가구 유통업체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 등 다양한 회사에 투자하며, 수익을 다각화해 안정적인 지주회사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각 기업별 재무제표 상황을 분석해가며 ‘왜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구절도 많지만, 재무회계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1960년대 ~ 1980년대 버크셔가 투자한 회사들의 사업구조나 면면을 보면서 느꼈던 점들을 꼽아보면
- 돈을 받는 시점과 돈을 내는 시점의 시차를 활용해 float를 확보할 수 있는 기업
- 은행업, 보험업, 대부업, 경품권 사업
- 1의 시차에서 발생할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높은 현금창출력을 가진 기업 또는 시장에서 경쟁우위가 확실한 기업
- 플랫폼사업(신문사), 씨즈캔디, 인터내셔널 브리지, 가이코 (경쟁우위),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월마트 대비 경쟁우위)
- 1 또는 2의 기업이더라도 고가에 인수한 정황이 없고, 상황이 변하면 계획을 과감하게 수정하고 행동.
- 호크실드콘: 3년 보유한 이후 손익분기점 확보되자 바로 매각.
- 웨스코파이낸셜(대부업): 본점 제외한 모든 지점 매각하면서, 본업 대신 포트폴리오 투자로 전환.
들이었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라' 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어떤 기업의 무엇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는지는 재무제표나 회계용어에 익숙해진 뒤 다시 읽어보면 깨닫는 점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