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이전의 저서 ‘관계'에서 주장하는 바를 한 가정의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
낭만주의가 주창하는 결혼과 사랑은 ‘연인과 부부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으며, 사랑의 과정과 이벤트에 주목하고 결혼을 ‘그 이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식의 결론으로 귀결함으로써 모순점을 덮었다.
완벽할 수 없고, 완전하지도 않은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함께하려면 어떤 관점과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거울치료로 보여준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요약이 쉽지 않다. 요약은 보통 글의 핵심을 추출해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글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쓰여 있어서 주장과 근거, 예시에서 핵심만을 추출해 재구성하기가 어렵다. 이 책도 인간의 불완전함, 낭만주의적 관점의 사랑이 가지는 문제점, 자녀와의 올바른 소통 등 다양한 소주제가 ‘라비'와 ‘커스틴'이라는 두 사람의 결혼 이후의 삶을 주제로 전개된다. 지식이나 개요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스토리에 몰입하고 저자의 해설에 공감하면서 읽는 재미를 스스로 느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전체적인 논조 자체는 ‘낭만주의적 사랑관'의 문제점을 언급한 ‘관계’ 책의 주장과 많이 겹친다. 그래서 읽기 편했지만, 그래서 좀 실망스러웠다.
- 낭만주의적 관점: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를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랑이란 상대방의 모든 면을 승인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도 나의 모든 면을 인정해야 한다.
- vs : 완벽한 인간은 없고, 낭만에 빠져 결혼한 사람도 서로의 날카로운 모습에 상처 입는다.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처럼 가르쳐주고 배우는 관계가 필요하다. 단, 인내와 배려가 필요하다.
-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교사가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수업의 성패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야 한다. 학생의 성취가 교사의 인생 자체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때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가능한데, 결혼한 사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받는 관계이기 때문.
또한 ‘교육받고 있다'가 아니라 ‘공격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 교육에 협조적이지 않으며,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인내하는 교사 위치의 배우자가 고통받는 원인이 된다.
등등... '관계' 책에서 언급하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이분법에 기반한 설명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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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지금까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접할 때마다 대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 흥미로운 논리 전개방식이 펼쳐지는 것을 좋아했다. 이 책도 만약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처음 접했다면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불안'에서는 현대인이 겪는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전개하는 방식이 좋았고
- '여행의 기술'에서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정으로서의 의미, 준비 과정에서의 의미, 경험으로서의 의미를 고찰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라 생각했고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만남에서 이별까지 이어지는 연애관계의 전 과정을 철학적, 사회과학적으로 비유한 방식이 인상적이었으며
- '관계' 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연인관계의 정의와 의미를 나름의 언어로 정리해낸 시도 자체가 특별하다고 느꼈다.
주제가 새롭건, 관점이 새롭건, 전개방식이 새롭건 무언가 '독창적이다'라는 시도가 있었고, 나에게 어렵지 않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은 항상 기대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매우 아쉬웠다. 물론 특유의 명언이 많고 공감할 만한 사례에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곁들여서 읽히게 하는 감각 자체는 그대로지만, 그가 많은 책을 쓰면서 일관적으로 보여줬던 "특별함"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사실 창작자에게 매번 '완전히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건 조금 가혹하지만... 뭐 어쩌겠어. 난 읽으면서 조금 실망스러웠는걸...
저자가 결혼 후 인생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벤트의 원인 / 의미를 분석한 문구를 몇 개 소개한다.
그럴듯한 주장이면서도 꽤 재미있는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접할 수 있다.
토라진다는 것
- 강렬한 분노와,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구가 양립하는 증상.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갈망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는다. 설명해야 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모욕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태를 말한다.
- 하지만 이건 역으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의 신뢰는 보통 의사표시를 우는 것으로밖에 할 수 없는 영유아 시기에 부모에게 무조건적으로 보채고 칭얼거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는 가장 유년기일 때, 무언의 이해가 보장되어 있던 때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 따라서 토라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온화하게 웃으며 끝낼 수 있다. 토라진다는 것의 의미 자체가 퇴행적이기 때문. ‘나의 부모처럼, 내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정확히 헤아려줘. 내가 사랑을 처음 배울 때 사람들이 내게 그래주었듯이' 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이를 용서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의 특권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사회에서 소중히 다뤄지는 이유는, 사회는 사라진 특질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자제심과 냉혹함, 합리성을 요구하는 세상은 어린아이에게서 ‘잃어버린 평형을 되찾아줄' 미덕을 발견한다.
- 어른에게는 이미 지루한, ‘단순한 것'에 열광하기
-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 갖기
-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없이, 장면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관념 없이 세상을 바라보기
성적 흥분은 옷을 벗은 상태와는 거의 무관하다. 열렬히 소망하고, 이전에는 금지되었으나 이제는 접근 가능해진 상대를 ‘소유 가능하다'고 허락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친밀해지고 싶다는 염원의 발로이며, 거리감 있던 상대와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주는 독특한 형태의 기쁨과 안도감이다.
결혼생활은 단순히 애정, 욕구, 열정, 갈망과 같은 감정의 축성(築城)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제도로서도 중요하다. 통제할 수 없는 순간순간의 감정변화에도, 한 해 한해 굳건히 버틸 수 있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언제까지고 자신의 감정만을 삶의 길잡이 삼아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이성이 활동할 때 고수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이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규약이 결혼이다.
현대 사회는 부부가 거의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문제는 ‘고통’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가 더 힘든 상태다’라는 자기위안식 결론을 상대방에게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일상에서 서로가 분담하는 것, 사회적 요구를 견뎌낸다는 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서로에게 위신을 세울 만한 일이다. 이상하게도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가 분담한 일을 가지고 칭찬하거나 동정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문명의 질서정연함과 연속성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담해 말없이 수행하는 노동에 필수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고전주의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재정적,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 자신의 영토가 있거나, 혼수를 준비할 수 있거나, 국가가 인정한 자격이나 기술을 갖추었거나… 낭만주의에서는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금전적인 행위로 폄하했다. 대신,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 /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느낌 / 이 사람 외에는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 등 감정적인 특질로 결혼의 조건을 이동시켰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오히려 우리가 연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표일 수 있다. 연인에게 실망했을 때가 비로소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할 상대방을 선택한다는 건, 평생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견뎌낼 것인지 결정하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