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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마르크 샤갈 특별전 - Chagall and the Bible 전시내용 및 후기

inspirit941 2022. 1. 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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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 MY ART MUSEUM

 

www.myartmuseum.co.kr

 

미술 문외한이 그림과 설명을 보면서, 도슨트로 들었던 내용을 복기하고 기록하는 글.

재미있게 설명해주신 정우철 도슨트님 감사합니다!


그림을 감상하기에 유용한 정보 몇 가지.

  •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1887년에 태어나 1985년에 생을 마감했다.
    •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니 매우 오래 살았다.
    • 유대인 신분으로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 다작으로 알려져 있다. 전란으로 고통받던 시절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사망 전날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 그림에 주로 사용한 모티프는 젊은 시절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사망할 때까지 평생 돌려썼다.
  • 모든 모티프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 하나로 요약된다. 고향 사랑, 연인과의 사랑, 인류애, 가족애.

 


 

나와 마을(1911). 샤갈이 사용하는 모티프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샤갈은 자신이 그림에서 사용할 모티프를 젊은 시절에 정해두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사용했다.

그렇기에 샤갈의 그림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요소의 뜻을 파악해두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 사걀이 그림에서 자주 사용한 모티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인 '나와 마을'을 예시로 들면

  • 상단의 마을: 샤갈의 고향인 러시아의 비테프스크.
    유태인 거주지역인 게토 중 하나였다. 전란을 거치면서 고향 사람들 대부분이 죽고, 마을은 폭격당해 없어졌다.
    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수십년 동안 쉽게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고향의 그리움을 주로 표현할 때 쓰인 모티프.
  • 물고기: 아버지. 샤갈의 아버지는 평생을 어업 도매상으로 살았고, 샤갈이 유학 간 사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
  • 염소: 비테프스크에서 가난한 유태인이 가장 많이 키웠던 동물이라고 함. 고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동물.
    고향 / 유태인 등 다양한 의미로 샤갈의 그림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
  • 바이올린: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유태인이 휴대하기 좋았던 악기. 유태인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모티프
  • 벽시계: 샤갈 본인의 뮤즈이자 첫사랑이었던 벨라에 관련된 물건
    가난한 자신과 달리 벨라의 집은 부자였는데, 보석상을 운영하던 벨라의 가문에서 같이 팔던 것이 고급 벽시계였다고 함.

 

마르크 샤갈과 벨라는 첫눈에 서로 반한 사이였는데,
게토에 살고 있고, 가난하며, 돈 벌기 힘든 예술업에 종사하려는 샤갈을 벨라 측 가족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을 반대했다고.

그래서 샤갈은 '프랑스 가서 성공해올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혈혈단신 프랑스로 떠났다.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샤갈은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성공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4년을 구르며 고생할 때 그린 그림이 위에 있는 '나와 마을'이며,

저 그림은 현재까지도 샤갈에게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더 드라마 같은 건 샤갈이 성공할 때까지 벨라도 그를 기다렸고, 결혼에 골인했다는 사실이다.

 

샤갈은 프랑스를 '제 2의 비테프스크'라고 말할 만큼 프랑스에 애정이 많았다고 한다.

프랑스는 그에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성취를 만들어낸 공간이자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있었던 곳으로, 사랑 그 자체인 셈.

에펠탑의 연인들(1960). 전시회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그림 두 점 중 하나다.

  • 파란색, 빨강색, 여백의 흰색: 프랑스 국기색.
    추가로 샤갈 본인이 좋아하는 초록색까지. 샤갈의 그림은 대개 이 네 가지 색을 사용해서 만들어진다.
  • 에펠탑: 사랑이 넘치는 공간. 주변에 연인이 항상 그려져 있다.
  • 에펠탑에 그려진 여성: 샤갈 본인의 뮤즈이자 첫사랑이었던 벨라.
    워낙 샤갈에게 중요한 공간이었고 사랑의 상징인 프랑스,
    그 프랑스 상징인 에펠탑에 있는 여성이라면 벨라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음.
  • 꽃다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이라고 작가 스스로 말했다.
  • 수탉: 정욕 또는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는 모티프. 
    프랑스가 샤갈에게 정신적인 사랑의 상징이라면, 수탉은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고 함.
    -> 샤갈의 프랑스 그림에는 에펠탑 + 연인 + 프랑스 국기색 + 수탉이 전부 그려진 그림이 많은 편.

 


이 전시의 주된 목적은 '샤갈이 그린 구약성경 - 신 중심으로 그려내지 않고, 인간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샤갈의 시선으로 담아낸 105점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전시회 안에서 봤던 수많은 구약성경 인물의 그림 - 야곱, 노아, 이삭,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등 - 을 그려낸 작품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전시장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라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어느 에디터가 리뷰 형태로 대략적인 모습을 남겨온 게 있어 첨부한다.

출처: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57524#link_guide_20160413124404_9759

 

성경 쪽 그림을 감상할 사람들에게 정우철 도슨트님이 알려주신 정보 세 가지

  1. 유대인은 성경 중 구약성경만 믿는다. 그리고 샤갈은 유대인이다.
  2. 샤갈은 구약성경의 내용 중 '인간이 중심이 된' 것들 위주로 선택해서 그렸다. 그래서 이야기가 끊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컨대 전시 첫 작품은 구약성경의 첫 내용인 '천지창조'가 아니라 '인간창조'다. 천지창조는 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한 거니까.
    인류애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함.
  3. 유대교에서는 신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죄악시된다고 한다.
    그래서 샤갈의 작품도 신이 있어야 할 위치는 구름으로 처리하고, 그 안에 손바닥으로만 표현했다.
    또는 천사가 하늘을 바라보며 신의 명령을 듣는 형태로 묘사했다.

 

내 감상

  • 의뢰를 받아서 그린 작품이라서 그런지 유대인 신분으로 구약성경을 그린다는 특수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회지에 검은 형상으로 그린 작품이 매우 많았다.
  • 피카소 느낌나는 강한 색채 / 뭔가 뒤틀린 피사체의 모습이 별로 없다. 단순하게, 유아용 그림책처럼 그렸다.
    구약성경을 읽어봤거나 구약성경 인물들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그림의 내용을 쉽게 유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1948).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jakka365&logNo=222591223338

 

도슨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서를 그리는 척 하면서 본인 이야기를 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105점의 구약성경 전시와 대비되는, 샤갈 특유의 화풍이나 색채가 보다 강해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그려져 있으니 성서에 관련된 그림처럼 보이지만,
    왼쪽에 있는 배의 모습은 성경에 나오기엔 너무 하이테크인 범선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이 그림의 제목은 '엑소더스(탈출기)'로, 예수와는 동떨어진 주제의 제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빛에서 내려와 배로 이동하고 있고, 배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다.

  • 샤갈이 이전까지 보여준 화풍 대비 매우 어둡고 음울한 색채. 전쟁, 홀로코스트, 뮤즈였던 벨라의 죽음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이 시기의 그림은 대개 어두운 색채를 띄고 있다. 성경에 충실한 그림이라면 이전까지의 구약성서를 그렸던 색채가 달라져야 할 이유가 없다.

  •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지식: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에 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1947년에 이르러서야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정부가 준비한 배에 유대인을 가득 태워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음.
    이 당시 투입됐던 배 중 가장 유명한 배의 이름이 '엑소더스'.
  • 따라서 이 그림은 성경의 내용이 아니라, 샤갈이 사는 시대의 모습을 그렸다고 보는 게 맞다.

 

강기슭에서의 부활 (1947)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이 그림도 마찬가지.

  • 예수 그리스도를 비테프스크 위에 그렸다. 여기서부터 이미 성경이 아님.
  • 오른쪽 염소 얼굴이 새빨갛고, 비테프스크 건물도 불타고 있다.
    이 중 지붕이 둥근 건물 하나만 멀쩡히 서 있고, 그 건물은 유대교 교회를 의미한다.
  • 역사적 지식:
    샤갈은 히틀러와 비슷한 나이였다. 정확히는 히틀러가 두 살 어리다.
    히틀러는 미술학교에 수 차례 지원했지만 한 번도 붙지 못했고, 마지막 미술입시에서 '그림이 아니라 건축을 하고 있다'는 혹평을 들은 뒤 미술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한다.
    히틀러는 수상이 된 후, 샤갈을 비롯한 유럽의 유명 미술가의 명화를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긁어모은 사진들을 모아 '퇴폐미술전 (나쁜 그림 전시회)' 을 열어 전시한 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전부 소각했다.
    샤갈의 그림도 상당히 많은 수모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퇴폐미술전 자료사진. 미술작품 위에 설명을 가려놓은 것도 전시계에서는 금기시하는 사항이었다. 서양미술사 사건 중 최악의 사건으로 꼽힌다고 하며, 히틀러는 퇴폐미술전이 끝나는 대로 그림을 전부 소각해 없애버렸다.

  • 샤갈은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이 받는 수모와 박해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으로 비유했다.
    "고통받는 예술적 순교자" 라는 차원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비테프스크 위에 그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의 어머니 (1968)

샤갈은 그림 못지않게 시를 많이 쓴 시인이기도 하다. 그 중, 예전에 쓴 시와 동일한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낸 것들이 꽤 있다. 대부분 시를 먼저 써 두었고, 나중에 그림으로 그려낸 형태가 많다.

 

'나의 어머니'라는 시는 1930 ~ 1935년에 지어졌고, 위 그림은 1968년에 그려졌다.

즉 자신이 쓴 시를 30년 뒤에 다시 그림으로 만들었다.

 

특징

  • 샤갈은 '어머니'라는 표현을 고향을 지칭할 때에도 종종 사용했다.
    샤갈의 친어머니는 1915년에 작고했다.
  • 1968년이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시기.
    • 왼쪽의 예수 그리스도: 살면서 겪어온 고통
    • 벽시계: 벨라를 떠올리게 하는, 행복했던 추억
    • 어머니 사후 50년이 지났지만 샤갈의 그림에서 어머니는 생전 모습 그대로를,
      샤갈 본인은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함께 그렸다.
    • 샤갈은 어머니를 특히 아꼈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가난한 집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아들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해주었기 때문.

또 다른 빛을 향하여 (1985)

65년에 쓴 시를 85년에 그림으로 완성한 것.

 

특징

  • 샤갈은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얼핏 보기엔 그림이 굉장히 지저분하다.
      전체적으로 선을 여러 번 그렸는데, 선을 한 번에 긋기 힘들었다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 이 그림은 샤갈의 생전 마지막 그림으로, 그림을 완성한 바로 다음날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자신의 등에 날개를 그렸는데, 이전까지 자신을 묘사할 때 등에 날개를 붙인 적이 거의 없었다.
    • 오른쪽 위에 있는 사람은 날개 달린 남자를 데려가려는 듯 하늘에서 손을 뻗고 있다.
  • 보통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그렸을 때,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림 속 그림'에 담겨 있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았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인데, 무엇을 그리고자 했을까?
    • 캔버스 안에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있다.
    • 앞 사람은 활짝 핀 꽃다발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전달하듯 내밀고 있다.
      샤갈에게 꽃다발이라는 모티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이었다.

 


샤갈의 그림들을 돌이켜보면, '사랑' 이라는 주제로 요약되고 있다. 샤갈은 생전에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썼다.

 

비테프스크는 고향에 대한 사랑

프랑스는 연인과 이성의 사랑

인류애를 담은 성서

오랜 전란이 끝난 노년기엔 부모에 대한 사랑까지.

 

혼란의 시기를 살아내면서 마르크 샤갈은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했고,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단어로 사랑을 꼽았다.

그걸 여러 개의 모티프로 바꿔서 일생동안 계속 그려내온 것.

 

 

이 전시회에서 가장 자주 보이던 한 마디이자, 샤갈의 철학을 요약한 한 마디는 아래와 같았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나의 전반적인 감상

  • 샤갈 전시는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흥행 보증수표라고 했다. 2018년에는 같은 전시가 서울 두 곳에서 열렸다고 할 정도니.
    그리고 샤갈의 인생사는 굵직한 그림 몇 가지와 도슨트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뭐랄까... 또 샤갈, 또갈로 전시회를 열어 흥행을 노리기 위해 Bible을 주제로 만들어낸 느낌?
    딱히 나쁜 건 아니다. 샤갈이라는 작가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이기도 하니까. 그냥 전시 구성을 본 내 느낌이다.

  • 왜냐면, 샤갈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랑'이 전시회에서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기 딱 좋았던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면서도
    도슨트의 설명대로 청년기 프랑스에서 겪은 낭만 가득한 에로스, 노년기에 들어서도 부모의 사랑에 깊이 공감하는 스트로게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 성경은 그 자체로 인류애 / 아가페적 사랑을 상징할 수 있지만, 전시에서 이야기했듯 구약성경 그림은 의뢰를 받아 만든 것이다.
    샤갈 특유의 화풍으로 표현한 것도 아니고,
    의뢰가 없었어도 자발적으로 구약성경의 내용을 아가페적인 정신으로 그렸을까?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2차 세계대전 즈음에 보여주는 어둡고 음울한 화풍으로 보았을 때, 성경의 상징인 인류애를 발휘했다기보다는
    슬픔, 고통, 아픔을 창작에 투영하고 승화해내려고 노력한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히틀러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그림이 전시회에 있진 않았으니
    '이 정도 수모를 당했는데도 욕 안한 것부터가 인류애 아니냐' 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나는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면서 소통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각자 머릿속에 다르게 정의되어 있는 듯한 느낌.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그저 나와 비슷하겠거니... 전제하면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마치 몇 년 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마케팅 용어를 아무나 입에 달고 살았듯,
    요즘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의미고찰 없이 쓰이듯.

 

최소한 샤갈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랑을 평생에 걸쳐 이야기했는지

이번 전시회에서 많이 배우고 느끼게 된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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