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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

누군가의 귀한 어두움, Where is Light? 이묵돌 전시

inspirit941 2019. 12. 1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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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이묵돌 전시

 

이 사람 글은 이 표현, 문장, 문장과 문장의 구조가 예술이라 도저히 건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낀 글이 지금까지 딱 두 번 있었다.

 

하나가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으면서였고,
두 번째가 오늘 전시의 글들이었다.

 

누구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 가끔씩은 버겁고 힘겨워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고, 나만 이렇게 힘든지 의문도 가져 보고,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힐링 베스트셀러의 그래도 괜찮아같은 값싼 위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처럼 고민과 무게를 안고 사는구나는 동질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동질감은 정말 귀해졌다.
SNS
는 밝고, 수려하고, 화려한 모습만을 담아내는 창이 되었고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진 친구들의 이야기에서는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방향감각은 진작에 적출당했고,
정처없이 걸음을 옮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나에게 빛은 어디 있나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절규하듯, 때로는 쓸쓸하게
풀어낸 26살 누군가의 밝지 못한 이야기.

 

누군가의 진심을 본 지 오래되었다고 느낀다면, 밝은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리셉션에서 직접 나를 맞이하는 이묵돌 작가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전시를 보았으면 좋겠다.
세파에 지친 내 모습과 어딘가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보며
위로받고 힘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색깔이 있는 사람이 좋다. 세상의 시선이나 다수의 의견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를 행동으로 잇는 실행력을 경외한다. 사람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며 2013년 이후 방송출연도 거의 고사한 채 병원이나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고등학교 졸업식을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SG워너비 김진호가 그렇다.

 

이묵돌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도 나한테는 그렇다. 2015~ 2016년 즈음, 페이스북의 카드뉴스가 콘텐츠로 소비되던 시절 리뷰왕 김리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로도 유명했던 사람이다. 스베누가 한창 잘나갈 때조차도 스베누 같은 잘못된 기업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패기넘치는 리뷰를 할 만큼 뚜렷한 색깔이 좋았고, ‘리뷰리퍼블릭이라는 스타트업으로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실행에 옮기려 한 추진력에 경외감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목소리와 색깔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김리뷰는 리뷰왕 김리뷰라는 타이틀도, 리뷰리퍼블릭이라는 조직도 내려놓은 채 지금은 그 자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묵돌이라는 작가가 되었다. 글과 그림으로 세상에, 자신을 찾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아 Where is Light 전시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내용이나 표현들, 기억에 남았던 순간들을 메모로 남겼다.
전시 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라서, 손으로 옮겨적었던 내용들이다.

 

글의 의미를 진정으로 곱씹어보고 공감하려면,

전시회까지 가서 작가가 글을 배치한 방법, 같이 걸려 있는 그림, 전시회에 놓인 조명과 흐르는 음악까지
공간 속에서 느끼는 게 더 좋다.

 

#1.
사람들은 운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알고보면 그만큼 쉬운 일도 없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시간의 몫이므로.

 

#5.
이른 아침보다 더 이른 아침의 등교길에는
미처 마르지 못한 이슬이며 먼지들이 뒤엉켜
홍염을 깨고 주홍색 거망으로 반짝이곤 했다.

...

혼자 남은 도시라고 상쾌한 건 아니야. 단지
외로워지기 전에 쓰러져 잠드는 것만이
네 최선의 방법이라고 도시 사람들이 알려주더군.

#6.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차들은 앞으로만 달렸다.
다들 앞으로, 앞으로만, 쫒아오는 차들이 무서웠다.
쫒아오는 차들은 뒤쫒아오는 차들이 무서워서 달렸다.
무서운 세상이었다.

 

#7.
우뚝 솟은 아파트들, 뜨문뜨문 빛나는 창살들.
오 이런 제길, 우리가 수십 년 평생을 저걸 위해 살아가다니.
저 빌어먹을 사각형 불빛 하나 얻어보겠다고.
...
높다란 건물 군데군데 켜진 수십억짜리 칠흑
사람사는 대신 돈이 살고 숫자로 팔아대는 바람에
...
어떤 놈은 떨어지는 대신 한 놈이라도 밟고 더 뛰어오르네.

 

#8.
빛조차 빨아들이는 내 방이 블랙홀이었다.
...
가족이란 미약한 중력에 이끌려 주위를 공전 또 공전.

 

#9.
쏘아올릴 적엔 온갖 희망과 염원, 장밋빛 미래 한가득 채워넣고선
머나먼 타향에서 일하다 죽고 나면 영혼없는 고철 덩어리라니.
...
(_
인간이 밉고, 그런 나조차도 인간이 아니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는 마무리_)

 

#10.
이 우주에 태어난 것들은 모두 혼자 와서 혼자 가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나는 날아가네. 그저 앞으로 가네
불확실한 확률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어느 순간부턴 이런 것도 헷갈리기 시작하겠네
끊임없이 가는 게 나인지 시간인지마저
혼란스러운 와중에 등 떠밀려서
멀리멀리 갈 테니, 돌아오지 못할 허공으로, 영영

 

#13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랬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고
닿지 못할 곳도 없을 줄 알았다.
방향감각 없이 휘청거리며
눈앞의 타인을 쫒고 애써 제치며
앞으로 가면 터무니없는 빈 공간이었다.

...

빛은 어디 있나, 너흰 어디를 보고 가고 있느냐... 아무도 모른다.
대답같지 않은 대답을 뒤로 또 터덜터덜
평생 집 한 채 제돈 주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는
광활한 우주조차 내가 사는 집이라 말하기 뭣해
...
수백억년 쯤 지나면 될 수 있겠지
자그마한 행성, 스스로 빛내지 못해 누가 흘리는 빛을 주워담으며
몸에 치덕치덕 발라보고는
나 여기 있소, 이렇게 빛나지 않소,
날 바라봐주오, 제발 날 바라봐주오.

 

#16.

약속하자, 기쁜 일에는 쉽게 기뻐하지 말고
슬픈 일에는 젖 먹던 힘까지 써서 기뻐하기로.
결과는 기쁜지 알 수 없지만
과정이 슬픈 건 확실해 보이니까
이왕이면 슬픈 것에 익숙해지는 게 낫겠지
너나 나나 슬퍼할 권리는 못 갖고 나왔고
웃지 않는 젊음에 돈 쓰는 어른은 없으니까.
우리 초록이 다 샐 때까지 입꼬리 꽉 붙잡고
악착같이 견디며 눈물날 땐 침으로 탁 뱉고 말자.
시간은 우리 편이니 언젠가 진짜 어른이 돼보자
문득 웃는 가면 그대로 얼굴이 돼 살아가면서
죽을 만치 슬퍼도 눈물 한 방울 안 나는 슬픈 어른들.

 

#17.
지상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땅 밑을 보지 않는다.
이층이든 삼층이든 수십 층이든, 더 높고 가파르며 원대한 곳을 바라본다.
...
올려다볼 힘도 없을 무렵이면
자식새끼라도 휜 등에 업어 높이겠다는 갈증은 뿌리로부터 속깊다.
뭘 하든 잘 될 거라는 기대감 심어놓고
풍선처럼 날려보내며 높이 올라가 환히 빛나소서’.
명문대 / 대기업 임원 / 고관대작을 기도했다.

...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는 옅어지고 숨은 가파르고
귀는 먹먹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꽁꽁 얼어붙거나 내부압력으로 터져 버린다는데
이만큼 부푼 꿈 날리기보다는 꼭 껴안고 사는 게
춥고 외롭지 않게 부대껴 사는 건 어떠신지요
...
말할 겨를도 없이 떠나와 혼자가 됐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나나 당신이나
평생 바라던 건 퀴퀴한 반지하 벗어나는 것뿐이었는데
밤하늘 외로운 별 되지 못하는 운명이 우리 패배의 이유라면
대체 누가 그렇게 말했나 지금 어디에 있나

 

#19.
살아보니,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운 건
어디에도 사랑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20
너무 어두운 터널을 지나다 보면
사람들은 까맣게 잊곤 한다.
모든 터널에는 출구가 있다는 걸

여기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두운 것밖에 보지 못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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