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09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
지친 자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소소한 깨달음을 짧게 짧게 전한다.
현대인의 특징을 잘 파악한 베스트셀러의 교과서.
가슴 깊이 공감하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잠깐 마음이 동요하고 글귀에 감동받는 정도의 책
유병욱 저 <생각의 기쁨>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1000만 관객의 영화는 관심이 없더라도 찾아서 본다. 그 속에는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면서, 시대의 요구가 무엇이고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책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현재 베스트셀러가 다루는 주제나 책의 형식을 보면, 사람들이 어떤 형식의 책을 선호하는지와 어떤 주제를 읽고 싶어하는지 대강은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들었다. 언어의 온도는 2016년에 발간됐음에도 2017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어떻게 쓰였기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본, 베스트셀러의 특징
블로그에 써도 될 정도의 짧고 읽기 쉬운 글. 책의 호흡이 블로그 글만큼이나 짧아졌다.
성취나 도전에 피곤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주제. 이를테면 ‘그 자체로도 괜찮다’
공감이나 깨달음이 담긴 한두 문장, 좀 있어 보이는 문장들.
책의 키워드는 ‘위로’다. 그렇다고 독자를 ‘아픈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툭 꺼낸 다음, ‘이러이러한 것 아닐까.’ 라는 식으로 은근하게 달랜다. 이를테면 ‘슬픔은 떨칠 수 없는 그림자다. 벗어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소재를 던진다. 그 다음 ‘섣불리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슬픔이라는 거울은 기쁨이라는 투명한 유리보다 나를 솔직하게 보여 준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균형 잡힌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고 위로하는 식이다.
베스트셀러 에세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한 편의 글이 아주 짧다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한 쪽으로 글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고, 길어도 세 장을 넘기지 않는다. 단어가 어려운 것도, 문장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라서 술술 읽힌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현대인의 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그렇다 해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다. 사실, 개별 글의 길이만 놓고 보면 개인 블로그에 올려서 읽는 게 더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글의 전개 형식도 아주 읽기 쉽다. ‘구체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고, 일반화한 대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을 집필하느라 몸을 혹사한 저자가 어느 날 앓아눕는다 .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몸이 보낸 것이라 생각해, 이번 주말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 구체적 경험.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무언가를 멈추거나 중단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나를 헤아리는 일에도 서툴다. SNS로 타인과 소통하는 건 잘 해도,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물다
- 일반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 싸울 대상은 차고 넘치는데, 내 자신과는 잘 지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저자의 생각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일들 - 지하철 내 노부부라거나, 주말 오후 카페에서 바라본 하늘이라던가, 잠들기 전 창문으로 바라본 바깥 등 -에서 글감을 찾아낸 것.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쳐내고 공감할 수 있게 마무리한 것 등이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던 따뜻함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이 책이 ‘소장 가치가 있는’ 베스트셀러라고 말할 수 없다. 에세이에 깊이가 묻어나려면,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독자가 차분히 따라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면서 독자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책과 독자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저자의 생각을 들어야 하고, 생각을 어느 정도의 길이로는 풀어내야 따라가기 쉽다. 에세이라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일상 속 모습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 생각을 확장해서 어디까지 뻗어나갔는지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자가 본인의 이력이나 소개를 책 어디에도 적어놓지 않았다면 더욱.
이 책은 그런 깊이는 없다. 물론 글을 써 보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명료하게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 책처럼 짧게 쓰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더욱. 짧게 쓰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하다 보니, 일상 사례 하나와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토막글 하나만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따뜻한 시선 하나만을 저자의 특징으로 꼽기엔, 이미 세상에는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작가가 많다.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저자라서 쓸 수 있는 깊이가 담긴 말, 조금 다른 시선의 위로나 공감이 없었다.
읽기 쉬운 책은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쓴 것이 아니라 그냥 쉽게 쓰인 책이면 더욱 그렇다. 쉽게 얻은 지식이 쉽게 잊혀지듯이, 저자의 글을 쉽게 읽고 넘겨버리면 그 내용이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공감의 소재들, 읽을 땐 공감이 가고 좋다. 책을 다 읽은 다음, 개인 블로그나 카카오톡 상태메세지에 공감한 글 한 줄 적으면 더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가슴 깊이 공감하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잠깐 마음이 동요하고 글귀에 감동받는 정도다. 사람이 진정으로 책을 읽고 변화하려면, 깨달음이 압축된 토막글 하나로는 부족하다. 따뜻한 사례도 사례로만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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