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02
“경제학” == ‘금융, 돈’이라는 부실한 전제로 쓴 책.
경제학, 심리학 용어를 설명한 뒤 ‘금전 관리, 투자 조언’으로 귀결되는 구조.
책의 제목은 ‘교과서’지만 학술서도 아니고 입문서도 아니며, 실용서도 아니다.
‘행동경제학 교과서’라는 거창한 제목이 꽤나 흥미로웠다. 원체 행동경제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의 결합이라는 특성상 대중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 수 있는 편이다. 리처드 탈러의 ‘넛지’가 오바마케어 때 한 번, 2017년 노벨경제학상으로 한 번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외에도 대니얼 카너먼이나 댄 애리얼리 같은 행동경제학 분야 선구자가 쓴 책도 많고, 일본 행동경제학 권위자인 도모노 노리오의 저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라는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입문서도 시중에 있다. 그런데도 ‘교과서’라니. 꽤나 자신감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에 한 번 읽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과서’는 절대 아니다. 입문서로도 적합하지 않다. 이 책보다 좋은 입문서, 교양서, 학술서가 이미 있고, 이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대체제보다 나은 점이 딱히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의 주제가 ‘금융 문제, 돈 문제’에 천착해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본질 중 하나는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분배해야 최고의 편익을 누릴 수 있을지’이다. 무한한 욕망에 비해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유한한 자원 중 가장 자주 접할 수 있고, 확장성이 높은 것이 ‘돈’일 뿐이다. 인간의 시간도 유한한 자원의 일종이며, 돈이 아니더라도 선택의 기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원이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이 다루는 인간의 행동은 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인간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행동경제학에서 제시하는 비합리적인 행동, 이를 설명하는 이론을 설명한 다음 ‘당신이 이렇다면, 당신은 돈을 모으지 못한다’ / ‘이렇게 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이 매 장마다 들어가 있다. ‘교과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편협한 시각이다. ‘돈’의 운용과 금융시장에서의 비합리적인 행태는 행동경제학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돈 문제를 제외하고도 인간의 선택에 합리성이 결여된 사유는 셀 수 없이 많은데, 이런 사례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조언의 내용에서도 일부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인간에게는 ‘마음의 회계’라는 현상이 있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는 현상으로, 해당 돈에 어떤 가치를 부여했느냐에 따라 소비 성향이 달라지는 걸 말한다. 이를테면 길거리에서 주운 10,000원과 알바로 번 돈 10,000원은 같은 액수의 돈이지만 소비할 때의 경향이 다르다는 논리다.
이 책에서는 ‘마음의 회계’를 걷어내고 ‘모든 돈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 조언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반화된 조언’으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음의 회계’는 인간이 스스로가 생각한 우선순위에 따라 돈의 가치에 차등을 둔 것에서 기초한다. 경제학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단어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간이 발달시켜 온 본성 중에 하나였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대표적이다. 당장 죽을 것 같다고 해서 내년에 농사지을 종자까지 먹어 버리면, 당장은 살 수 있지만 내년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하기 위해서, 사업하기 위해서 종잣돈을 모으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회계’ 개념이 꽤나 유용하다. 덜 먹고 덜 쓰더라도 지금 최대한 돈을 아껴서 빨리 더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마음의 회계’ 개념을 활용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쓴 교양서도 아니고,
돈과 금융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는 미흡하다.
‘교과서’라는 이름을 쓰기엔 책의 주제나 방향이 많이 엇나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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