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6
“지대넓얕” 블록체인 버전. 제목 값을 확실히 한다.
격변하는 블록체인 업계의 핵심 지식과 역사를 간략히 돌아볼 수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신념의 영역인지 독자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책.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처음 블록체인을 접하는 사람에게 안내원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한 책이다. “가볍게 블록체인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이더리움과 기타 Dapp 플랫폼들, 탈중앙화가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지대넓얕’ 시리즈와 비슷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주제가 ‘화폐’와 비트코인이다. 현대 사회에서 화폐의 가치는 실물가치와 연동된 게 아니라 ‘화폐 발행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형성한다. 지금까지의 화폐가 국가라는 발행기관을 바탕으로 가치를 확보했다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시스템에 기반해 신뢰를 확보하고 가치를 형성했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중앙화된 기관’ 및 관리감독 기관이었다면, 탈중앙화된 시스템이라는 정반대의 수단으로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 비트코인이다.
다만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시스템으로 신뢰를 확보하려다 보니 느린 처리속도와 채굴과정에서 과도한 전기자원 낭비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비트코인의 단점을 해결하려 한, 신뢰를 확보한 ‘거래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알트코인이 만들어진다. 블록의 생성속도를 빠르게 한 ‘라이트코인’, 블록의 용량제한을 높인 ‘비트코인캐시’, 비트코인보다 익명성을 높인 ‘모네로’, 마스터노드라는 개념을 제시해 색다른 해결책을 설계한 ‘Dash’까지.
‘교환의 매개’인 비트코인 및 기타 알트코인과 달리, 아예 블록체인 위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올릴 수 있도록 한 최초의 플랫폼이 이더리움이다. 교환의 매개를 넘어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블록체인이 등장했다는 의미다. 이 플랫폼 위에 중개자가 없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인 Dapp이 등장했다.
그러나 Dapp의 경우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가치가 필요한 서비스인가?”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서비스가 많은 편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Dapp은 탈중앙화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가치를 만들어냈거나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콘텐츠 플랫폼 Steemit, 클라우드 스토리지 FileCoin, 본인인증 서비스 Civic, 기록 증명 서비스 Factom을 소개했다.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이더리움도 느린 처리속도와 비가역성, 프로그래밍 코드의 보안성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이더리움의 한계를 해결하고 Dapp 플랫폼의 맹주가 되기 위한 여러 후보자들도 간단히 소개한다. 중국판 이더리움인 NEO, 합의 알고리즘으로 PoS를 도입한 Qtum, DPoS로 처리속도를 높였다고 주장하는 EOS, 학술적으로 검증된 기술만 활용한다는 카르다노가 언급된다.
이외에도 Private 블록체인을 간단히 소개하고 사례로 리플을 언급한다. 은행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을 표방하며 해외 송금 서비스의 편의를 개선한 네트워크가 리플이다. 거래소에서 많이 언급되는 XRP는 리플 네트워크의 가치에 직접 연동된 것이 아니라, 리플 네트워크에서 일종의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해야 네트워크의 가치와 연동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리플은 XRP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나, 현재 은행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암호화폐 사용을 꺼리기에 XRP의 활성화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디지털 세상에서 보여준 탈중앙화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복제’가 용이한 디지털 세상의 특성 때문에, 디지털 거버넌스는 지금까지 ‘통제’라는 중앙집중형 서비스로 이루어졌다. 인터넷 사용자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신뢰’를 구축하기에는 ‘복제’라는 기술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의 ‘네트워크 효과’가 ‘중앙집중형 서비스’가 결합되며, 인터넷 서비스는 결과적으로 ‘독점’사업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띠게 됐다.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복제’ 때문에 생기는 ‘불신’의 장벽을 걷어내고 디지털 세상에서의 ‘자발적 질서’의 구축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보장하는 ‘신뢰성’과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자산’을 결합할 경우, 네트워크 구성원을 중앙화된 조직으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거버넌스가 가능해지고,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문과생인 내가 블록체인이라는 가능성의 영역에서 개발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워낙 급변하는 데다가 이제 토대를 잡기 시작하려는 기술이다 보니, 어디까지를 사실이라고 믿고 어디부터를 신념으로 채워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기술이 완성된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 가능해질 수 있을지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파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실제로 개발을 해야 알 수 있다고 봤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어디까지를 신념으로 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게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 중 최상이라고 봤다.
개발은 내 손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사실을 정리하고 신념을 세울 수 있었다. 만약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와 투자를 고민한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를 신념으로 정의해야 할지 더 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사실과 신념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이 책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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