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경제학입문의 목차 /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의 설명의 조합
예전에 경제학을 공부했던 사람이 빠르게 Remind하기에 적합한 책
결론 위주의 간략한 설명 때문에 초심자가 읽기에는 불친절하다.
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하는 학생이지만, ‘경제’라는 것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한 번에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경제’를 쉽게 언급하지만, 경제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맥락에 따라 적당히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가는 오르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 것도 경제사정이 어려운 거고, 수출은 부진하고 원자재값은 올라 대외무역적자가 심화되는 것도 경제불황이다. 때로는 주식이나 부동산이 ‘경제’라는 단어로 포장되기도 하고,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성을 ‘경제성’이라는 단어로 치환해 쓰기도 한다.
‘경제’라는 단어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보니, 경제학을 배우려는 사람을 자세히 알아보면 얻고자 하는 정보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정책지식을 위해, 누군가는 금융지식을 위해, 누군가는 그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까 싶은 막연한 생각으로 경제학을 배우려 한다. 그래서 ‘30분 경제학’이라는 이 책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과연 이 책은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일까’였다. 경제학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와 수많은 암묵적 정의 중에서 어느 측면을 다루고 있을까.
‘경제’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학부 수준에서 내가 배운 ‘경제학’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었다. 한계비용과 한계효용, 기회비용을 고려해 어떤 결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배운다. 거칠게 요약하면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소비자이론, 생산자이론도 여기서부터 시작되며, 거시경제학에서의 무역, 정치경제학,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의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다만 ‘원론’이나 ‘개론’일수록 설명과 이해가 쉽도록 단순화된 모델을 바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보고 겪는 ‘경제’와는 차이가 크다. 현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경제학원론이나 개론 수준이 아니라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하며, 그 정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공자 못지않은 지식이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대학교 4년 경제학 내용을 82개 개념으로 끝낸다는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는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된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싶다는 현대인의 욕망을 건드렸을 뿐이다. 미시경제학 내용은 7차 개정교육과정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요약한 수준의 설명이다. 생산자이론과 소비자이론 부분은 ‘가계는 효용극대화 지점까지 소비하고 기업은 이윤극대화 지점까지 생산하며, 그 지점은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이다’는 설명이 전부이며, 미시경제학을 대학에서 배우게 되면 초장부터 마주치게 될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필자가 7차 개정교육과정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7차 개정교육과정을 비교 대상으로 사용했고, 그 때도 무차별곡선은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았다.)
거시경제학 부분은 IS-LM 곡선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고등학교 교과서보다 앞서긴 하지만, 그래프의 설명을 길게 쓰지 못하고 결론을 내리다 보니 경제학 초심자인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거시경제에서 가격이 상승하면 이자율이 상승하는 이유를 별다른 설명 없이 LM곡선의 우측이동으로 결론짓고 넘어가는 식이다. IS-LM곡선을 처음 배우는 초심자에게는 어떤 변수가 IS와 LM곡선의 이동을 결정하는 변수인지 바로 납득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IS-LM으로 거시경제를 설명하려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학파와 신고전주의학파를 비교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케인즈학파의 논리는 그래프로 설명하지만 신고전주의는 말로 풀어쓰고 끝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정된 분량에 두 학파의 논리를 다 담을 수 없는 건 이해하지만, 케인즈학파의 논리에만 그래프를 쓰고 신고전주의는 말로만 설명한다면, 경제학 초심자가 과연 두 학파의 논리를 균형 있게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어려운 개념이라 그래프로 시각화한다 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데.
결국 초심자가 ‘경제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정도로 이 책을 읽게 되면 좌절을 맛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이 책이 ‘30분 경제학’이라는 제목,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책’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하고 있다보니 “이렇게 쉽게 풀어쓴 책도 못 읽나”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한 편이긴 하지만 친절하게 쓴 책은 아니다. 예전에 한 번 공부했던 사람이 핵심 개념 중심으로 Remind하기엔 유용하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이 읽고 이해하기엔 어렵다. 경제학이라는 과목부터가 대학교 4년을 전공으로 배우는 학부생들도 어려워하는 내용이 많으니, 교양으로 경제학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보다 친절히 쓰인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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