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분석하고 생각할 능력을 빼앗는 재테크책
예상독자를 누구로 상정할 것인지 고려한 흔적이 전혀 없는, 유튜브 콘텐츠의 짜깁기 서적
‘저축 열심히 하고, 불굴의 의지로 똘똘 뭉쳐서 아파트 사라'가 이 책 내용의 전부다. 근거는 없다
헛웃음 나오게 하는 책이 참 오랜만이다. 경제분야 베스트셀러라서,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읽는지 궁금해서 샀었다.
읽지 마라. 그냥 이 저자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이 책은 총체적으로 문제투성이다.
이 책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돈 열심히 모아서 집 사라' 이다. 불필요한 지출 줄이는 방법이 ch1 ‘고치기’, 돈 열심히 모으는 건 ch2 ‘모으기’, ‘집 사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ch3 ‘굳히기’와 ch4 ‘불리기’로 구성했다. 특히 ch4는 ‘왜 주식투자를 권장하지 않는지' 논리를 구성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이 책을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비판하자면
책의 구성 면에서는 ‘예상독자를 제대로 상정하지 않고 쓴 불친절함'을,
논리 면에서는 ‘근거가 빈약한 아파트 가격 정당화 논리'를,
재테크 서적으로서는 ‘독자 스스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빼앗는 방식의 글 전개'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플레이션이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인지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인지조차 정의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의 파도를 저축으로 이겨내자'는 식의 주장처럼 책의 논리 군데군데에도 비판할 점이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경제용어를 애매모호하게 정의하거나 아예 정의하지 않고서 남발하는 건 차라리 이 책에서 약과인 수준.
책 한 권을 일관성 있게 집필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을 주제만 묶어서 대충 통합했다는 인상이 아주 강하게 든다. 다시말해 ‘독자로 누구를 상정하고 있는지'가 각 챕터마다 다르다. 내 생각엔 이걸 고려해서 쓴 책이 아니다.
예컨대 첫 장인 ‘고치기'에서는 저자가 KBS ‘국민 영수증’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활동하며 마주한 사람들을 예로 들며 ‘불필요한 지출' 항목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급 240만원인데 40만원을 스타벅스에 쓰는 사람, 월급 300만원에 벤츠 뽑아서 유지비에 허덕이는 사람, 배달음식에 월 100만원 쓰는 사람, 1년에 2000만원 이상을 여행으로 쓰는 사람… 다양한 소비 항목에서 소득에 맞지 않는 수준으로 지출하는 사람들에게, 적정 수준의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 알려준다.
특이한 점은 ‘적정 수준의 지출은 어느 정도여야 한다' 라고 저자 스스로 결정한 값을 솔루션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에 40만원 쓰는 사람의 경우 ‘커피는 월 소득 3% 이내, 테이크아웃은 월 5잔 이내로!’ 라는 식이다. 근거는 '그 정도만 써도 스타벅스 마니아가 될 수 있다. 프리퀀시로 이벤트 굿즈 받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다. 마치 갓난아기에게 이유식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 디테일한 해결책이 ch1 ‘고치기' 챕터 내내 등장한다. 그래서 스스로 소비를 통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고, 경제관념이 부족한 젊은층에게 최소한의 기본지식을 주입하려는 의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ch3에서 주택시장을 설명할 때에는 LTV나 DSR과 같은 용어조차도 설명 없이 들이밀거나, ch4에서 주식시장과 경기변동을 설명할 때는 ‘금리'와 ‘경기변동'간의 기본적인 관계 설명을 생략했다. ‘아니 그 정도는 경제나 재테크에 관심있어서 책 집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ch1에서 상정한 독자층을 생각해보면 경제용어의 개념 소개를 생략하고 주장을 전개하는 건 굉장히 불친절한 설명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소비 통제조차 어려워 저축은 꿈도 못 꾸는 사람이 주택담보대출의 기본 용어는 알고 있고, 금의 인상 또는 인하가 경기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진짜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일지 생각하고 책을 쓴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주택시장이나 주식시장의 내용은 ‘다른 콘텐츠에서, 다른 독자층을 상정하고 쓴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택, 그 중에서도 아파트 가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최근 집값의 급격한 상승 요인이 ‘시장' 외부에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한 채 설명했다.
저자는 아파트라는 자산의 가격 형성 논리로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의 수익률 (또는 이자율) 로 할인' 한다는 수학적 계산을 고수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파트 자산의 가격을
(현금흐름) / (현금흐름의 안정성 - 성장 가능성)
으로 정의했다. 이 수식을 가지고 아래의 논리를 이끌어낸다.
예컨대 서울 중위 아파트 중 보증금 2억 / 월세 120만원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현금흐름 최대치는
- 해당 아파트를 월세 줬을 때의 수익 (120만원 * 12) = 1440
- 보증금 2억 * 전월세전환율 2.5% = 500
- 평균 재산세 140만원
- 1440 + 500 - 140 = 연 현금흐름 1800만원
연 1800만원의 수익을 2022년 1월의 이자율 1.5% 기준으로 예금으로 만드려면 14억 3000만원이고, 이 아파트의 가격은 2022년 1월 기준 11억 5000만원이다.
현금흐름이 1800만원이고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현금흐름의 안정성 - 성장 가능성) 이라는 수치는 역산이 가능한데, 이 값은 대략 1.56%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값을 (2.56% - 1%) 라고 분리하고, 예컨대 아파트의 기대 수익률이 2.56%이고 성장 가능성이 1%라면 1.56%라는 숫자가 나온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성장 가능성이 1%보다 커지면 집값은 더 상승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자산 가격을 결정하는 원론적인 수식 자체는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다. 주택은 인간의 의식주 중 하나라서 필수재이고, 좁은 땅에서 모두가 원하는 주택은 한국에서 특히 희소하다는 특수성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설명이 2021 ~ 2022년 한국의 기록적인 집값 상승을 설명할 수 있나? 한국에서 집값이 진짜 시장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으로만 만들어졌나? 정부의 정책은 '시차가 있어 집값에 천천히 반영되는 주택공급'뿐이라서 집값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지금의 집값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 정부 정책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진실의 일부를 드러내지 않은 채 주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ch4 ‘불리기' 에서는 재테크와 자산의 기본개념, 경기변동과 주식시장 등을 포괄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재테크는 ‘공부한다고, 과거의 지식을 학습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걸 ‘효율적 시장가설'을 근거로 들며 말하고 있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올바른 근거로 쓰일 만한 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시장이 주는 여러 가지 신호를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회초리' 니 ‘솔루션’이니 하면서 저자가 결정한 해결책을 책 곳곳에 던져 두었다.
그 해결책이 어떤 논리와 근거로 결정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예컨대 ‘노후소득 월 500만원이 필요할 경우 자산분배'로 저자는
- 국민연금 100만원
- 퇴직연금 100만원
- 주택임대소득 150만원
- 기타소득 (봉사활동이나 자아실현형 경제활동) 150만원
을 제안한다. 근거? 없다. 건물주보다 아파트 주택임대소득이 더 안정적이라는 게 끝이다.
빚 갚는 순서도 제안한다.
- 1순위: 신용대출
- 2순위: 전세자금대출
- 3순위: 사업자금대출
- 4순위: 학자금대출
- 5순위: 주택담보대출
주택담보대출이 후순위인 이유는 ‘주택이라는 자산이 가격 오르면 본인의 자산증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 이라고 한다. 뭐… 원칙을 놓고 보면 순위가 이해는 가는데,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저 순서가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ch1 ‘모으기'에서 사람들에게 ‘적절한 소비수준'을 결정해서 내려주는 것부터가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능력'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타벅스 가는 횟수, 배달음식 시켜먹는 횟수, 일 년 쓸 여행예산을 결정해주는 게 그 사람의 경제 자립도와 재테크에 도움이 될까? 결정에 이르는 논리를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도출된 결과를 알려주는 게 사고력과 판단력 증진에 도움이 될까?
물론 요즘 세대가 생각하기 싫어하고 결정해주는 걸 선호한다는 판단으로 KBS의 ‘국민 영수증' 프로그램은 근거를 생략하고 솔루션만 제시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송에서는 시간관계상 편집되거나 다루지 못했던 ‘어떤 논리로, 왜 그때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책을 쓰는 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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