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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

2023.05.20 플랫폼엘 - Phantom Sense 전시 후기

inspirit941 2023. 5. 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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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latform-l.org/exhibition/detail?exhibitionNo=824 

Phantom Sense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오는 3월 24일부터 6월 28일까지 특별기획전 《팬텀 센스 Phantom Sense》를 개최합니다. 《팬텀 센스 Phantom Sense》는 시각예술에서 중심적으로 여겨져 온 시각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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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와 목적
 

시각예술에서 부차적인 요소였던 청각, 미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시각과 동위로 두고 바라본다. 인간은 감각 수단이 시각 위주로 발달했지만, 생태를 이해하고 균형있는 상태로 나아가려면 ‘비인간'의 방식을 인간의 방식과 동위로 봐야 한다. 이는 프랑스 이론가 ‘브뤼노 라투르'가 2005년에 주창한 ‘사물 정치’라는 개념에 착안했다. 

 
“시각 중심의 문화에서 감각 간의 위계를 전복시키고 유영하게 한다” 는 것이 전시의 목적인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회의 작품들이 명시된 전시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서, 그다지 만족스러운 전시는 아니었다.
 




해미 클레멘세비츠 - 종/총 (소리 단어 시리즈)




 
‘종'과 ‘총'의 ‘ㅇ'에 스피커를 배치하고, ‘종' 글자의 스피커에는 종소리가, ‘총' 글자의 스피커에는 총소리가 난다. 작품 설명에는 ‘시각적 요소인 ‘단어’와 청각적 요소인 ‘대상/사물의 소리’ 사이의 동어반복 효과를 위해 준비된 장치'라고 한다.
 
청각을 강조하고,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매개인 ‘글자'와의 상호작용을 의도한 것 같은데… 크게 와닿진 않았다.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과 총이라는 글자의 유사성을 의도한 것과 ‘ㅇ'에 스피커를 넣은 건 시각적으로 반복효과를 준 반면, 종과 총의 녹음된 소리는 피치 / 주파수가 크게 달라서 전혀 ‘유사하다' 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종이 상대적으로 낮은 음에 멀리 퍼지는 저주파라면, 총은 날카롭고 강하게 퍼지는 고주파다. 동어반복을 의도했다기엔 ‘총’과 ‘종'이 만들어내는 청각적 차이가 너무 도드라져서, 머릿속에서 ‘유사성'이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괴리감을 의도하고 만든 작품이라면 잘된 것 같은데,
‘동어반복'을 의도하고 만들었다면 솔직히 반쪽짜리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재 - <무제>

 

 

이 전시회에서 별로였던 작품 1.

나는 창작자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방식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작품'을 전시해놓고 ‘꿈보다 해몽’ 식으로 작품의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매우 싫어한다. 불친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내가 감상하러 왔지 수수께끼 풀러 온 게 아니잖아
 
개인전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작품만 놓은 전시회를 여는 게 아니라면 보통 관람객과 예술가는 전시회에서 초면인 경우가 많다. 예술가가 평소에 무슨 작품을 했는지, 어떤 작업세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 작품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팜플렛을 들여다보고, 설명을 읽어보면서 작품을 이해하고 예술가의 의도에 공감하는 게 전시회라는 시공간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서로 살아온 세계가 다른, 예컨대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과 대화를 시도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살아온 세계를 한국어로만 설명하면 외국인이 그 말을 알아들을까? 양쪽 다 알고 있을 법한 매개를 써서, 대화라면 짧은 영어라도 쓰면서 상대방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서로 초면인 상황에서 아무런 해석의 여지조차 없는 불친절한 작품을 전시해놓는 건 ‘우리 초면이지? 여기 나의 고귀한 예술적 가치관과 의도가 담긴 작품이 있어. 너가 알아서 이해해봐‘ 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셈이다. 이렇게 느껴지면, 딱히 내 시간을 들여서 더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휘 -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된 8개의 스피커, 3개의 구조물을 위한 구성>

 

 
 

빔프로젝터로 설치된 조형물과 동일한 모양의 화면을 지도처럼 보여주고, 화면에 유영하는 작은 물체들이 정사각형을 통과할 때마다 동일한 위치에 설치된 정사각형 모양의 스피커가 소리를 내는 작품. 화면의 작은 물체는 관람객이 보기에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공간은 무질서한 음률로 채워진다. ‘일반적으로 소리를 읽는 행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내가 서 있는 물리적 공간에 마치 ‘화면에 유영하는 작은 물체들'이 실제로 떠다니고, 이 가상의 물체가 스피커를 건드려서 물리적 공간에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도한 듯 하다. 화면의 작은 물체들 (편의상 소리 오브젝트라고 지칭한다) 은 저마다 모양과 꼬리길이가 다르고, 정사각형 물체를 통과할 때마다 고유한 소리를 낸다.
 

청각을 시각화해서 소리가 나는 시점을 예측 가능하게 했다는 건… 큐베이스처럼 미디 작곡에 쓰는 소프트웨어에서 이미 익숙하게 느끼는 거라 큰 감흥은 없었다.

‘공간을 유영하는 소리'를 의도했다고 하는데, ‘소리가 유영한다'는 느낌은 정작 청각이 아니라 시각에서 느껴지도록 설계해두었다 보니 ‘청각과 시각을 동위에 놓는다' 라는 전시회 의도와 잘 부합했는지는 모르겠다.

청각적으로 소리가 유영하려면 소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느낌을 스피커가 잘 살렸어야 할 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

 




안성석 - <T/S>

 
가상현실을 컨셉으로 잡고 시각과 촉각을 연결하려 한 것 같은데, 작품이 고장이라 체험할 수 없었다.
 
‘기능하지 않는 도덕'이 지배하는 가상현실을 소재로 했고, 가상현실 속 버스기사인 내가 경찰차의 추격에도 버스를 멈추지 않는다는 행동 하나로 ‘기능하지 않는 도덕'을 설명하려 한 것 같은데… 상황과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도덕적 이탈을 해내는 인간상을 “왜” 그려내고 싶었는지를 모르겠다. “맞아. 인간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 그런데 뭐? 하고싶은 말이 뭔데?" 라는 느낌.
 

단순히 인간 특성을 환기할 목적이었다면 이걸 굳이 예술 전시품으로 만들지 않아도, 가상현실(VR)까지 갈 필요도 없지 않나?
‘선택적으로 도덕적 이탈을 해내는' 환경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나?
인류가 해온 수많은 사회실험이 이 현상을 증명했고, 수시로 도로법규를 위반하고 사람을 총으로 쏴도 되는 GTA 게임 시리즈가 있다.
더 단순하게는 TRPG 역할극에서 상황 설정만 해줘도 재현할 수 있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인간의 촉각'으로도 이 특성을 재현할 수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별로 재미없다. 새롭지 않다.

 
 




염인화 - <임포스터키친>

 



이 전시회에서 별로였던 작품 2.

 
난잡하고 이질적이며, 별로 관심도 없는 작가 본인의 에고만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 ‘키친'이라는 점에서는 미각을 노린 것 같은데, 디지털 환경에서 ‘미각'이 대체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며 미각에 집중할 환경도 아니다. 그냥 이 작품 자체가 이해 안되는 것투성이로, 팜플렛에서 소개하는 작품 설명을 보면 아래와 같다.
 

관객은 간호사 복장의 원숭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상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관객은 ‘고객'이 아니라 ‘레스토랑 음식 종업원' 역할을 맡게 된다.
관객의 관람 대상은 기괴하게 생긴 음식이나 주방도 아니고, 테이블에 앉은 고객들의 대화다.
고객들은 NFT 민팅 실패한 예술가, 큐레이터, 건강기술 개발하는 스타트업 대표, 간병로봇과 환자와 보호자들, 종교인이다.
대화 주제는 결국 ‘나이 듦 (aging)’으로 수렴하며, ‘간병인 이슈’ / ‘자본에 따라 갈리는 실버타운 수준' 처럼 노화를 키워드로 한 사회문제.
관객은 이 와중에 ‘대화하는 사람들 간 위계'에 집중하라고 안내받는다. 밥 사는 사람과 얻어먹는 사람, 셰프의 강압적인 지시에 순응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라고 한다.
관객이 이 위계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귀막은 것처럼 그저 음식을 나를 뿐이다.
'가상공간 안에서 경직된 시스템과 이동할 수 없는 서열을 노화라는 키워드로 드러내며, 위계의 해체를 역설한다'는 게 주제임

개연성 납득부터가 하나도 안 된다. 원숭이는 왜 나왔고, '미각'을 담당할 나는 왜 종업원이 되었으며, 왜 하필 종업원 신분이 된 관객이 다른 테이블에 있는 고객들의 대화를 감상해야만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뜬금없는 자본주의 비판과 위계질서의 강압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자, 이 전시회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각 중심의 문화에서 감각 간의 위계를 전복시키고 유영하게 한다” 였다. 그냥 한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전시주제와 상관 없는, 작가 본인의 에고만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노화와 강압적인 위계질서가 전시 주제인 ‘감각 간 위계의 전복'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 ‘미각'이라는 키워드는 대체 어디에 있나?
 


후니다 킴 -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 수석 시리즈)>

 

 

이 전시회에서 별로였던 작품 3.

자연석을 실내에서 감상하도록 ‘수석'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함. 자연에서 돌 자체의 데이터와 돌이 있는 주변환경 (바람, 물소리 등) 데이터를 수집한 뒤 3D프린터로 인공 수석을 만들었다. ‘네오 수석'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작품 하단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인공 수석이 회전하며, 회전할 때 작가가 수집한 바람소리, 물소리가 재생된다. 손잡이 오른쪽에는 센서가 있고, 테이블에 고정된 센서와 인공수석의 표면 사이의 거리를 표시한다고 한다. 즉 자연물을 참고해서 인공물을 만들었고, 자연물의 데이터를 전시 현장에서 재생했다. 관객의 피드백과 전시환경의 시공간은 가변적이라서, 공간의 시각, 청각, 촉각은 절대적이지 않다.
 

관객과 작품은 상호작용할 수 있고, 전시장의 시간과 공간 중에 동일한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은 그닥 새롭지 않다. 공간의 분자 개수나 위치를 근거로 1초 전의 공간과 1초 후의 공간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이니까.

이 작품이 ‘전시회의 주제와 일관성이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지 않다' 라서 실망스러웠다.

‘시각 중심의 문화를 작가는 어떤 감각으로 어떻게 비틀어서 작품에 표현했나?’ 라는 질문을 했는데 ‘동일한 시공간이란 없으므로 모든 감각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동문서답을 받은 느낌.



안성환 - <Sweet!>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에 내려가면 저렇게 큰 튜브 하나만 달랑 있는데, 이 튜브에 담겨 있는 공기는 작가 본인의 체취다. 닫힌 공간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이 체취를 느낄 수 있게끔 동선이 만들어져 있다.
 
사람을 인지하고 구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통 ‘시각'을 사용하는데, ‘후각'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좀 충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향이 딱히 불호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게 사람의 체취라는 설명을 듣고나니 냄새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심지어 작가 본인 사진이 붙어 있던데, 전시회 찾아온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 체취를 맡게 하겠다는 사고방식이 놀라웠다고 해야 할까… 
 
도슨트의 설명과 팜플렛의 내용이 약간 다른데, 도슨트는 ‘이건 작가 본인의 체취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사회문화가 다르니까 사람마다 고유한 체취가 있다' 라는 식으로 설명한 반면 팜플렛은 ‘작가는 자신의 체취를 확인한 결과, 체취에서는 고유한 개체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species)의 것에 가까운 것 같다'는 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작가가 자신의 체취를 추출해서 확인한 뒤 ‘나만의 고유한 향이 아니라 인간종 고유의 것이다' 라고 납득하게 된 과정이 설명에서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자신의 체취가 인간종 고유의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는 건,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체취도 맡아봤는데 나랑 비슷하더라’ 라는 식의 데이터에 기반한 일반화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 사례가 궁금했다. 설마 자기 체취만 맡아보고는 ‘나의 체취는 인간종을 대표할 수 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진 않았을 거란 말이지..?
 




 
전시회에서 가장 웃기고 어이없었던 부분은 기념품점이었다.
보통 전시회에서 기념품을 팔 때엔, 전시회 작가의 작품을 굿즈로 만드는 등 ‘작품에 관심이 생긴 관람객에게 소장을 유도하는' 상품이 많았다. 내가 그동안 가봤던 모든 전시가 이 문법을 따랐다.
 
그런데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고 해야 할까…


전시회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김형슬이란 사람은 대체 누구고, 콘크리트로 화병 만든 게 왜 18만원이나 해야 하나?
맨프롬이스트? 김영균? 반달가슴곰은 전시에서 본 적도 없는데 가격은 또 왜 이리 비싸?
이경규 / 홍재진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무슨 맥락에서 판매하는 건지 모르겠고.. 명색이 '가구'인데 보관함 기능이 미약하고 가격은 90만원이다.

 
이 전시 티켓, 성인 1매에 만 원이다. 심지어 SKT에서 전시 티켓을 무료로도 풀었던 적도 있다.
 
1매에 만 원 하는 전시회를 보고 기념품점에 들른 관람객이 살 만한 가격대인가?
기념품점의 굿즈가 이번 그룹전의 주제 또는 그룹전에 참여한 작가들과 관련이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도 그렇고... 그냥 ‘괴리감’이 내추럴 컨셉인 전시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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