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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포로들

inspirit941 2019.04.30 12:19

 

세계사를 ‘지정학에 기초한 세력균형’의 논리로 관통하는, 깔끔한 세계사 명저

세계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 견제와 균형의 역사이며, 
세력 간 균형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분쟁과 전쟁을 낳았다.

한반도 분단과 중국의 비상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세력균형’이라는 세계사 흐름의 복권을 의미하며, 
한반도는 ‘세력 확장의 교두보’가 아니라 세력 간 ‘완충지대’ 역할을 할 때 평화로울 수 있다.

 

180426
 
세계사가 지정학에 의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좋은 책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같은 고대-중세 역사부터 독일의 30년 전쟁, 영국과 러시아의 세력 견제에서부터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소련의 붕괴 이후 중국의 부상에 이르는 현재까지를 지정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책에 따르면 세계 역사는 크게 두 개의 거대한 지정학적 세력으로 이루어졌고, 세 차례의 거대한 패권다툼의 격전이 있었다. 두 개의 지정학적 세력은 각각 해양세력 대륙세력’,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패권을 두고 다툰 세 차례의 격전은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칭한다. 세계의 분쟁 중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분쟁이자, 앞으로 있을 그레이트 게임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지정학에 기반한 그레이트 게임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먼저 유럽. 유럽의 기본적인 지정학 기반의 외교 원칙은 세력균형 질서이며, ‘서방 해양세력의 범주에 포함된다. 풍부한 해안선, 양질의 수로와 항해 가능한 내륙 수로라는 자연적 조건, 다양한 지리적 구획으로 발생한 여러 민족과 세력 간 경쟁은 유럽의 해양진출을 가속화했다. 이 때문에 유럽세력은 아시아로 가는 직항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 가능했고, 이들의 해상장악은 유럽세력을 세계사의 중심에 놓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이 해상을 장악했다 해도 아시아의 
 
유럽은 독일 30년전쟁을 계기로 유럽대륙 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영토분쟁을 종식시켰다. 유럽의 크고 작은 세력의 영토와 배타적 주권을 보장하는 국민국가 체제를 확립했고, ‘현 상태에서 더 이상 영토 갖고 싸우지 말자는 요지의 세력균형 질서를 확립한다.
 
세력균형 질서의 핵심은 힘의 균형을 통해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므로, 압도적인 패권국가의 출현을 막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힘의 균형추를 맞추기 위한 소방수의 역할은 유럽 내에서 섬나라라는 특수한 지리요건을 가진 영국이 맡았고, 세력균형 질서를 깰 경제지리적 요건이 갖춰진 프랑스, 러시아로 대표되는 유라시아 내륙세력 침략의 방파제이자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독일을 견제하는 구도였다. 세력 균형이 프랑스에 의해 깨졌을 때가 나폴레옹의 집권 시기, 비스마르크 재상 사후 독일 제국, 히틀러의 독일이었다. 그리고 세력 균형이 붕괴된 결과는 전쟁이었다.
 
(실제로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은 독일이다. 유럽대륙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면서 바다를 맞대지 않아 해양으로 직접 진출이 불가능한 (다시 말해 동서로 나아가기 쉬운) 지정학적 위치, 유럽 타 국가에 비해 많은 인구와 잠재적 국력을 가진 국가적 특성 때문에, 독일이 약해지면 프랑스와 같은 타 국가의 팽창욕을 자극하고, 독일이 강해지면 주변 국가가 공포에 처하는 딜레마가 유럽 역사에서 반복됐다. 독일의 팽창을 제어하고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건 지금까지도 유럽역사에서 진행되는 딜레마로 남아 있다.
 
유럽의 세력균형을 변주하는 국가는 유라시아 대륙세력 러시아였다. 러시아 대륙이 제국으로 통합되면서 유럽대륙이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두려워하던 대상이다. 강력한 힘으로 유럽을 평정한 독일과 프랑스 모두 러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진격했다가 패퇴한 경험이 있다. 유럽에게 경각심과 위기감을 주는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한 국가가 바로 러시아다.
 


 

1차 그레이트 게임  영국과 러시아의 식민지 패권을 둔 전쟁.
승자: 영국, 패자: 러시아.
 
제국으로 통일된 후 세력을 불려 유럽을 견제할 만큼 성장한 러시아와, 네덜란드  스페인에 이어 강력한 해상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영국이 유라시아 식민지 패권을 놓고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식민지화할 경우 영국의 최대 식민지인 인도가 위협받을 거라는 우려에서 시작된 러시아와 영국의 대립에서 그레이트 게임이 촉발됐다.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받는 세력은 영국과 협력을 맺었고, 영국의 입김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친러시아 정책을 취하는 등의 선택이 당시 외교의 전반적인 흐름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던 일본이 영국과 동맹을 맺었던 것이나, 아편전쟁을 일으켰던 영국에 대한 반감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려 했던 청나라의 외교노선 등등이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러시아의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애 패배하며 막을 내렸고, 러시아는 세계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다.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는 영국이 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후 아예 유럽역사에서 철수했다가, 소련이라는 거대한 국가로 역사에 재등장한다.
 
1차 그레이트 게임 이후, 세력공백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러시아의 패퇴로 유럽 동부에서 유럽을 견제하던 세력에 공백이 생겼고,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의 몰락 이후 세력 복권에 실패했으며, 유럽 내부에서는 통일된 독일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영국은 균형의 수호자이지만, 유럽 대륙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통일 독일은 점차 강해지지만, 유럽 대륙에서 독일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독일 내에서 독일에 유리한 세력균형을 지지하던 비스마르크가 실각한 후 독일은 팽창주의 노선으로 선회한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팽창주의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세계대전 이후에도 통일된 독일 / 견제세력의 부재 문제는 그대로였기에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차 그레이트 게임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두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명분삼아 격돌한 전쟁
승자: 미국, 패자: 소련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유럽 중심의 세계 질서는 완전히 몰락했다. 뒤이어 전쟁에서 물자를 지원하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무력화한 미국, 유럽 전선에서 독일을 패퇴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소련이 새로이 그레이트 게임 전면에 부상한다. 해양세력인 미국과 대륙세력인 소련의 2차 그레이트 게임이 바로 냉전이다.
 
미국의 지정학은 구대륙인 유라시아 대륙과 완전히 유리된,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건국 이후 미국을 견제할 아메리카 대륙 내 세력도 거의 없었고, 대서양으로 분리된 지리조건 덕에 유라시아 대륙의 간섭도 거의 받지 않았다. 내륙 깊은 곳까지 항행 가능한 강의 존재는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였고, 북미 대륙의 남반구는 인간이 거주하기 가장 좋은 기후와 지리조건을 갖고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의 개통 이후, 미국은 2개의 대양을 무대로 한 해양세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었다.
 
소련의 경우, 주변의 막강한 세력과 투쟁을 거쳐야 하는 지정학을 타고났다. 국가 전체가 바다나 산맥 같은 자연적 방벽이 없다 보니 외침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소련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국토를 최대한 확장해 전략적 종심을 확보해야 했다. , 소련의 핵심부까지 진격해야 할 경로를 최대한 늘리는 팽창정책이 소련의 기본적인 기조였다. 프랑스와 독일 둘 다 소련의 심장부까지 진격하다가 추운 날씨와 길어진 보급로 문제로 패퇴한 것이 소련의 지정학적 전략인 셈이다. 자연 방벽과 전략적 종심을 확보해 국가 안보를 지키려는 소련의 팽창정책은 서쪽으로는 동유럽 지역, 동쪽으로는 사할린, 남쪽으로는 캅카스 산맥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문제는, 소련에게는 광활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부동항이 없어 내륙까지 생필품을 운송하는 비용이 너무 높았고, 이민족과 점령지 주민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치안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소련의 외부 진출을 제한해 말려죽이려는 봉쇄정책을 사용했고, 미국이 베트남전쟁으로 침체기를 겪던 6~70년대는 소련이 봉쇄 뛰어넘기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한 이력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광대한 제국을 유지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 새로운 대륙세력인 중국이 미국과 손을 잡고 압박을 가하자 결국 붕괴된다.
 



3차 그레이트 게임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새로운 패권국가로 부상한 중국과 서방 해양세력의 대표인 미국의 격돌
미국은 소련 때 했던 것처럼 중국의 영향력 봉쇄 정책,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내부 및 주변부, 해양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하는 확장 정책을 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체스게임 같은 느낌.
 
 
중국이라는 국가의 지정학은 상당히 독특하다. 문명의 발원지는 황하로 해양보다는 대륙의 성격이 강하지만, 서북 지방의 초원 유목세력이 지속적으로 중국 영토의 중심인 중원으로 내려와 점령 / 흡수의 과정을 거치며 중국의 일원이 되었다. 유목세력에 밀려 중원의 한족은 중국 남부로 남하했고, 이 과정에서 강남으로 불리는 양쯔 강 이남의 동남 연안지대는 지정적 가치가 점차 올라간다.
 
하지만 중국 명나라 대 정화의 원정을 이후로, 중국은 해상 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 서북 지방 몽골족의 침략을 방어하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에 따른 것인데,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 중국이 아시아 바다의 종주세력을 포기한 것이 되었다.  300년 후 1800년대에 이르러 서방 해상세력이 큰 어려움 없이 아시아를 유린하는 간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중국의 지정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서북 지방에서의 안보위협을 막기 위해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 서북 변경지대를 완충지대로 확보해야 한다. 둘째, 한족이 거주하는 중원 지역의 통일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동남 연안지대를 통제해야 한다. 특히 서북 변경지대는 안보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했다면, 동남 지역은 안보와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중요성이 급부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 발생한 국공내전은, 서북 지역의 위협을 우선시했던 대륙지향적인 공산당과 동남 지역의 경제력과 해상패권을 우선시했던 국민당의 충돌이었다. 결과적으로 공산당이 승리했고, 동남 연안지대에 밀려든 서방 해양세력과 중국 내부의 동조세력을 청산하는 데 중점을 두는 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연안지대의 경제활동을 해금령으로 봉쇄한 채 경제성장을 해내려는 전략이 실패하면서 동남 연안지대를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미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해금령을 해제하면서 동남 연안지대의 성장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 성공한다. 
 
현재 중국은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지정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편이다. 서북지방의 안보 위협은 중국의 성장과 소련의 몰락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낮아진 상태다. 외국 자본과 기술에 중국을 개방해도 중원 지역이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했고, 현재까지 이 전략은 성공했다. 동남 연안지대는 중국 경제의 중추로 자리잡았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잠재성을 모두 확보한 채 미국과의 그레이트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 


임진왜란 이전  중원 질서를 위협할 경우 정벌, 중원 질서가 안정될 경우 평화
임진왜란 이후  해양세력의 대륙 진출기지 / 대륙세력의 해양 방어선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크게 변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중원의 패권질서에 의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결정됐다. 단적으로 말해, ‘한반도와 만주가 하나의 세력권에 통합되고’, ‘중원의 패권질서가 정돈되지 않은 경우 중원 세력은 한반도를 침략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고조선, 고구려. 한반도와 만주가 통합될 경우 중원 지역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한다는 중국의 의식 때문이다. 또는 중원을 위협하려는 유목세력(거란, 여진족)이 배후를 미리 안정화하기 위해 한반도를 침략했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던 것이나, 후금(청나라 건국 이전)이 조선을 침략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반도와 만주가 분리되어 있고 중원의 질서가 안정될 경우 한반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명과 조선, 송과 고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으로 일본이 독자적인 해양세력으로 부상하고,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세력이 강해지면서 한반도는 본격적으로 교두보, 진출기지의 역할이 부각된다.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대륙세력은 해양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이 주목받게 된 것.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전쟁이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무대가 한반도였고, 한반도 분할의 직접적인 계기였던 6.25 전쟁에서도 이 특징이 드러난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 동반부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이다. 또한 미군의 정규 지상군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일하게 직접 발을 딛고 있는 곳이다. 섬에 주둔하는 미군은 섬이라는 지형 특성상 방어전력의 성격을 띄는 반면, 대륙에 직접 연결된 지역에 주둔한 미군은 유사시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공격전력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해양패권국가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에 군사력을 전개해야 할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교두보이자 전략적 전초기지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부각된다. 실제로 미국의 해외 주둔 군사규모 중 주한미군은 주일미군, 주독미군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에 해당한다.
 
그렇다보니 중국은 이 완충지대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중국이 6.25 전쟁에 중공군을 파병한 것은 현재까지도 중국이 건국 이후 해외에 군대를 파병해 전쟁을 벌인 유일한 사례이며, 역사적으로 접경 국가와 적대 내지는 긴장관계를 유지한 중국이 유일하게 일관적인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가 북한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중국 서쪽 국경지대가 황무지나 사막, 고원지대인데다 중국 수도와도 거리가 있는 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는 주민이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며 수도와  가깝다. 6.25 전쟁에서 만주와의 접경지역인 평안도가 미군에 의해 장악되자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중국은 만주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현실화되자 군사적 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이라는 국가의 존재로 중국은 앞바다인 황해의 실효적인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반도 전체가 해양세력의 손에 들어간다는 건, 중국 수도 바로 앞바다에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이 주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까지도 남중국해, 동중국해도 중국이 완전히 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한 지역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황해마저도 중국의 통제권 하에 없는 셈이었다.
 
따라서 한반도는 완충지대 교두보냐의 기로에 서 있으며, 해양세력이 부상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문제다. 한반도의 안정은 열강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균형의 중심이자 완충지대로 기능할 때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세력균형이 깨질 때 완충지대로 기능하기보다는 교두보로 전락해 왔다. 전쟁과 참화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 역시,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고, 서방 해상세력이 중국/러시아와는 수교하지만 북한과는 하지 않는 등 고립되는 상황에서 자국 보호를 위한 자구책에서 출발한 문제다.
 
저자는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균형의 위기가 아니라, 소련 붕괴로 무너졌던 서방 해상세력 대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균형 회복이라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러 열강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타협해서 한반도에 강제한 완충지대가 현재의 분단인 셈이다. 각 열강의 최우선 관심사는 한반도가 누군가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되, 전쟁과 같은 수단으로 급격한 세력 변화를 막는 것이다. 여러 이해관계와 역학관계가 맞물려 있는 게 현재 한국의 분단 상황이기에, 저자는 같은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는 민족통일론이나 공산주의 국가이므로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반공통일론은 위험한 이상주의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분단 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해 공존 체제로 안정화하는 것, 한반도가 열강의 교두보가 아닌 완충지대의 역할을 다하게 안정화하는 것이 분단 체제의 해소로 가는 첫 걸음이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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