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확신이 생겼다. 메타버스는 알맹이 없는 마케팅 용어로, 제 2의 ‘4차 산업혁명'이다.
몇 년 뒤 다른 마케팅 용어로 대체될 것이다.
한 권을 다 읽고도 ‘메타버스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도저히 내릴 수 없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플랫폼 기업 + 온라인화 + 실시간성(선택)' 정도 되겠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시대를 흔들 혁신도 아니다. 그저 플랫폼 기업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 중 하나일 뿐이다.
본질 없이 빙빙 돌기만 하는 내용에 사람 짜증나게 하는 책.
책 한 권으로 모든 지식을 이해하는 건 욕심이지만,
책 한 권을 다 읽고도 핵심개념 하나 잡히지 않는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다. 개념이 허구이거나, 책이 잘못됐거나.
2022년 세상의 키워드는 메타버스다.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었고, 네이버와 카카오가 앞다투어 ‘메타버스'로의 진입을 선언했다. VR과 AR, NFT와 블록체인, 가상아이돌이나 제페토 같은 가상환경 기술이 속속 뉴스에 등장한다.
그래서 메타버스를 설명하려는 책을 구했다. 난 2018년 블록체인 대유행시대와 몰락의 2019년을 꽤 가까이서 지켜봤고, 2014년경 유행하던 ‘빅데이터’가 지금엔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말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과연 메타버스는 이것과 다른지, 한국에서 줄기차게 외치던 ‘4차 산업혁명'이란 마케팅용어와 뭐가 다른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사실 메타버스라는 용어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명확한 실체가 없고, 전문가라고 떠드는 사람은 많으며, 야심차게 도전한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기업이 있으면 걸러야 한다는 걸 2018년 블록체인 때 느꼈는데 지금 메타버스가 딱 그렇다고 느껴서다.
책 딱 한권만 더 읽어보고, 국내외 메타버스를 지향한다는 기업들의 전략을 보겠다. 그럼 내년이면 이 단어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구성하는 네 가지 세계관을 제시한다.
- 증강 현실. 현실세계에 판타지 / 편의를 입히다.
- 라이프로깅. 내 삶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다
- 거울 세계. 세상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다.
- 가상 세계. 어디에도 없던 세상을 창조한다.
증강현실: 예시로 들 게 이렇게나 없나? 특별한 점이 이렇게도 없나?
증강현실에서는 2018년 현빈과 박신혜 주연 드라마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포켓몬고 제작사 나이앤틱의 전쟁 땅따먹기 게임 ‘인그레스', 코카콜라가 2014년 크리스마스에 싱가포르와 핀란드에서 시행한 ‘눈 전달 이벤트', 아트 시리즈 호텔이 투숙객에게 도둑질 이벤트를 공식 제안한 사건, 방탈출 카페와 스노우, 제페토를 언급한다.
증강현실이라고 하면서 2018년 방영된 드라마가 첫 등장하는 것부터 무슨 논리로 이해해야 하는지 어질어질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제작비와 CG로 만들어낸 방송화면을 보고 증강현실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대체 뭘까? 그럼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방송사, 영화제작사, OTT 업자들은 전부 메타버스의 선두주자라고 봐야 할까?
코카콜라의 이벤트도 어째서 증강현실이고 메타버스인지 모르겠다. 이 이벤트는 2014년에 시행된 것으로, 겨울에도 눈을 보기 힘든 싱가포르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참신한 기획이자 마케팅이라고 봐야 한다. 대형 전광판에 싱가포르는 핀란드를, 핀란드는 싱가포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배치했고, 핀란드에는 ‘눈을 퍼 넣으세요!’라는 안내판과 삽, 박스가 있다. 여기에 핀란드 사람이 눈을 퍼 넣으면, 싱가포르의 인공 제설기에서 눈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순간이동 같은 신기술도 아니고, 2014년 기준으로도 박스에 쌓인 눈의 무게 정보를 제설기에 전달해서 그만큼 생성하도록 하면 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무게가 같다는 사실이 중요한 기획도 아니니, 무게정보 전달할 것도 없이 대충 눈 쌓이면 일정한 양만큼 인공제설기로 만들어주는 걸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아트 시리즈 호텔의 투숙객 게임은 10년 전인 2012년에도 보도된 적 있다. 이 당시에는 ‘새로운 형태의 소셜 마케팅' 이라고 평가받았으며, 클리오광고제와 칸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했다고도 한다. http://www.fmnara.com/news/11399 https://questschool.kr/bbs/board.php?bo_table=game_notice&wr_id=149&page=4
약 10년 전에 호평받았던 좋은 아이디어, 기획과 마케팅이 ‘사용자의 몰입감을 증가시킬 수 있는 증강현실이자 메타버스'라는 논리로 둔갑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2012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할 때조차도 미처 보지 못한 점이 있기에 메타버스의 소재로 재평가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서는 그런 신선한 시선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방탈출 카페는… 좀 과몰입한 느낌이다. 물론 방탈출 카페에 컨셉이 있는 곳도 있다. 탐정이 되어 실마리를 찾아간다던가, 경찰이 되어 범인의 행각을 역추적한다거나,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물자를 얻어 탈출한다는 시나리오 등을 제공한다. 몰입감을 높여 주기 위한 장치일 수는 있지만, 방탈출 카페를 이용하는 사용자 중에 ‘이것이 증강현실이다' 라는 수준의 인식을 갖는 사람이 있을까? 돈을 내고 입장하며, 제한시간이 지나면 빠져나온다는 사실이 보장되는데? (안 그러면 범죄다)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오락거리로서의 가치가 있는 거지, 이걸 증강현실이라고 판단하는 건 과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제페토와 스노우, 스마트 팩토리 등 기술 기반의 사례도 나열한다. 하지만 제페토와 스노우의 경우 ‘온라인 세계에서의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초창기의 온라인게임 아바타와 다를 것이 없다. 유려한 3D기술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보다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졌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페이스북 정도 되는 기업이 사명을 바꿀 만큼 혁신적인 기술인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또한, 다양한 필터가 장착된 스마트폰으로 자기자신을 찍고, 그렇게 보정된 내 모습을 나 자신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다. 피처폰 시절 유행하던 얼짱각도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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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로깅 세계 : 대략 2015년 정도의 온라인 SNS 정의와 사용행태를 설명함.
그래서 왜 지금은 SNS가 아니라 메타버스라고 불러야 하냐니까?
라이프로깅에서 지면에 할애한 내용은 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온라인에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페르소나를 바꾸는 사용행태를 보이고 있다’, ‘인간은 관심과 칭찬을 갈구하는 동물이며, 라이프 로깅은 관심을 바라는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이다', ‘온라인에 쓰이는 뻘글, shitpost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라이프로깅을 다루는 한국 매체 ‘나홀로산다'와 ‘인간극장'을 예시로 든다.
메타버스라서 라이프로깅이 특별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미 오프라인의 존재와 온라인의 존재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네이버 댓글창에서의 나'와 ‘커뮤니티 사용자의 나'를 다르게 인식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널렸다. 이건 메타버스 시대라서가 아니라, 온라인 매체를 사용한 경험이 오래되면서 사용자들이 적응하고 변화한 것에 가깝다.
‘관종'이라 불리던 페북스타가 한때 유행이었고, 상대의 인생이 궁금하다는 원초적인 욕망은 브이로그 형태로 유튜브에서 막강한 콘텐츠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인간극장은 ‘누군가의 인생을 방송한다'는 취지로 예능보다는 다큐에 가까운 콘텐츠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런 방식의 라이프로깅을 원하는 수요도 있으니까 존재하고 있다. 나혼자산다는 예능으로 풀어냈지만, 단순히 ‘스타의 라이프로깅을 관찰한다'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라이프로깅 방식이 뭐가 특별해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이 책 끝까지 답을 알지 못했다.
거울 세계: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배달의민족이나 에어비앤비도 메타버스다.
에어비앤비는 현실 위에 지구상 최대의 호텔을 구축했고,
배달의민족은 음식점의 메뉴와 주방의 공간을 가상화했기 때문이다.
Zoom은 메타버스 시대의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지 제시했다고 한다.
사실 이쯤에서는 슬슬 화가 났다. 여기의 예시는 그저 전부 ‘플랫폼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고, 플랫폼 기업의 역사와 혁신성은 다른 책에서 훨씬 더 깊고 진지하게 분석해 두었다. 배달의민족 앱이 ‘음식점의 앱을 직접 보고 주문하지는 못하지만 후기와 사진을 보며 음식 맛을 떠올린다'는 설명은 억지스럽지만 그럴 수 있는데, 그래서 메타버스라는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에어비앤비는 유행에 따라 업종의 정의가 자꾸 뒤바뀌는 대표적인 예시다. 공유경제라는 이름이 유행이던 2016년 경에는 공유경제 비즈니스의 예시로 자전거 대여 서비스와 같이 나오더니,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유행하자 플랫폼 기업이 되었다. 이제는 메타버스가 뜨니 메타버스 기업이란다. 솔직히 이쯤이면 넌더리가 난다.
물론 마인크래프트와 나이키 플러스 러닝 (대략 한국의 야핏과 비슷한 느낌) 에는 메타버스라고 부를 만한 개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현실과 유사한 가상공간이 있고, 같은 공간의 사람들과 소통할 매개가 있으며, 그들의 참여가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이 설명, 플랫폼 기업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말이다.
시장참여자를 독려하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분을 때로는 강화하면서, 때로는 약화하면서 더 많은 접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플랫폼기업과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플랫폼기업이 메타버스를 다음 기치로 내걸고 있긴 하지만, 플랫폼기업의 특성과 메타버스의 특성 정도는 구분해서 설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Zoom의 예시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온라인 수업을 통해 더 자유롭게 토론하고, 참여하며,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수업을 만들 수 있다'이며, 예시로 미네르바대학교를 들었다. 미네르바대학이란 2014년부터 순수하게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 수준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 대학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토론하고, 참여하며, 상호작용하는 수업이 옳다”는 건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검증받은 사고력 있는 인간을 기르기 위한 수업이다. Zoom 온라인 수업이라서 할 수 있고 오프라인이라 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의지, 가르치려는 내용의 수준, 제한된 시간 여부 등 수많은 제약조건이 주어지면 ‘검증된 좋은 교육방식'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Zoom을 활용하고 있는데도 관성적인 행태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는 오히려 온라인 / 오프라인 여부로 문제에 접근하려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다. 이걸 메타버스라는 선상에 두려고 하는 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상세계.
로블록스, 레드데드온라인 같은 게임. 포트나이트 가상세계에 광고를 넣는 기업들, 루이비통과 LoL의 콜라보, 동숲에 선거캠프를 차린 바이든 등의 예시를 소개한다.
그리고… 사이버펑크2077을 예시로 들었다.
심지어 바로 다음 장에 ‘메타버스 시대 기업에게 하는 제안’이 있는데,
삼성전자에게 사이버펑크2077에 광고 넣으라고 주장했다. 진짜 큰일날 뻔한 소리를 하고 있어…
혹시 몰라서 사이버펑크2077이 무슨 게임인지 간단히 소개하자면
- GTA 시리즈와 같은 높은 자유도의 샌드박스 게임을 지향했지만 개발이 몇 년이나 지연되었고
-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이었던 광고 트레일러 영상과는 달리, 출시된 실제 게임은 미완성품 수준으로 총체적 엉망이었던 게임이다.
- 미국에서 소비자들에게 소송 맞았다.
여긴 그냥 게임 이야기다. 굳이 최신게임을 들지 않아도, 저자의 주장을 종합하면
- 개인 아바타가 있고
- 사람들끼리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 해당 세계관에 자신의 직업이나 역할이 부여되어 몰입감을 유도할 수 있다면
- 메타버스가 된다.
수명 20년 된 MMORPG류 최고 고전게임 바람의나라를 운영하는 넥슨, 축하합니다.
귀사의 게임은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훌륭히 편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기 많은 게임이 기업과 콜라보하는 것도 새로운 물결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래전부터 게임이 특정 회사와 콜라보하면서 이벤트를 열거나, 새 아이템을 출시하거나, 게임에 해당 회사의 이름이나 광고를 넣는 식의 협업은 계속 있어왔다. 그게 포트나이트라 새로울 것도 없고, LoL이 루이비통과 협업한다 해도 새로울 건 없다. 그냥 게임산업의 크기와 비중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사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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