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1990년 이후 출생자인 우리는 무엇인가’를 94년생인 저자가 풀어낸 에세이.
공통점을 특정할 수 없는, 갈라파고스 섬의 생태계처럼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세대. 같은 세대끼리도 이해하고 소통히가 어려운 세대.
어떤 환경에서 MZ세대가 성장해 왔는지 돌아볼 수 있는 책. 우리는 공감하기에, 어른들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대선 시기라서 그런지, 2030 - 소위 MZ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많이 언급되고 있다. 몇 년 전 ‘90년생이 온다'를 토대로 기성세대가 청년층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면, 지금은 청년층에게 어떻게든 공감을 얻어보려는 - 현실적으로는 대선에서 한 표라도 더 받아보려는 - 기성세대의 활동이 눈에 띈다.
그런 기성세대에게 나는 이 책을 꼭 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성세대는 청년층을 ‘MZ세대’라고 거창하게 정의하고 특징을 정리했지만, 정작 그 특징을 토대로 청년층에게 공감을 얻어보려는 시도는 대개 성공적이지 못했다. 2030이 보여주는 특징만 파악했을 뿐, 그 원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니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에서 제시한 MZ세대를 이해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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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이후 출생자는 성장기에 IT서비스 발전의 수혜를 누렸다. 기성세대보다 ‘편한 삶'을 누리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할 때 깔려 있는 전제인 “덜 불편하고 더 편리한 삶 -> 더 행복한 삶이다"는 명제는 틀렸다. 90년생의 불행은 ‘불편과 결핍’에 기반한 게 아니라 ‘편의의 과잉'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술의 발달로 누구에게나 쉽게 소통할 수 있지만, 정말 상대가 내 말을 이해했는지 ‘믿는' 통신은 더 어려워졌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기술 발달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통신'은 통할 통(通) + 믿을 신 (信), 즉 내가 어떤 의도를 담아 의견을 전한 뒤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언어, 비언어, 반언어를 총동원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해도 오해가 생기는 게 사람 관계인데, IT통신의 편리함은 비언어와 반언어를 이모티콘과 같은 그림으로 대체한 채 우리에게 제공됐다. 메시지와 이모티콘을 활용한 통신이 너무 쉽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이해했을 거라고 덥석 믿었다가 상처받는 대신 외롭고 고독해지는 길을 선택한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이 생각하는 허용 범위 - ‘선 넘지 마' - 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선 넘는 건 실례라는 것에 다들 공감하고 누군가가 선을 넘었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어디까지가 허용범위고 어디부터 금지인 건지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 발화자가 알아서 잘 판단해야 하는데, 텍스트와 이모티콘이라는 전송수단의 한계까지 감안해야 한다.
결국 말을 하면 ‘내 말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선을 넘지는 않았는지’ 불안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선을 넘었나, 날 싫어하나'라는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불안하다. 이 불안한 외줄타기에 질려버리면 ‘굉장히 방어적이고, 상처받기 싫다며 안으로 파고드는 은둔형 외톨이’ 인생이 된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내가 받을 상처만을 대비해 ‘이 선은 넘지 말아주길' 지레 겁먹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은 측정하기도 어렵다.
사실, IT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세상의 발전속도는 놀랍도록 빨라졌다.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디지털 시대를 겪은 과도기적 세대인 90년대생, 태어나면서부터 순서대로 카톡 / 유튜브 / 틱톡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살아온 00년대 이후 세대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해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우리 세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반가웠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의 말같잖은 위로 말고, MZ세대를 이해하겠다며 가식적인 행동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어른의 위선 말고, 비슷한 삶의 노선을 추구한 끝에 무력하고 외로움만 남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예컨대 우리 세대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
- 피터지게 싸우는 온라인의 성별갈등 대비 연휴엔 모텔방 구하기도 어려운 오프라인의 모순이라던가
- 취업에 그토록 목매면서도 1년 내 퇴사율도 높은 현상이라던가
을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성향을 토대로 진단한 부분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기성세대도 ‘요즘 것들은 말이야' 라고 타박하기만 할 뿐이었고, 우리 세대조차도 납득할지언정 설명하기엔 어려움을 느끼던 부분에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모습을 하나의 분석대상 내지는 이용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당신에게서 태어나 당신들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당신들이 살아온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 책을 통해서라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 이해 ‘해줘'라고 하냐고? 기성세대가 우리를 낳았고, 우리가 적응할 환경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환경에서 살아남고 적응해야 했다. 여기에 기술발전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모습은 기성세대의 잣대와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기성세대의 삶을 역사로라도 배웠지만, 그들은 우리의 삶이 어떠한지 모른 채 ‘나 때와 비슷하겠지'에서 멈춰 있다.
공감은 바라지도 않는다.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오력'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열정페이와 노오력’ 항목에서 저자가 마무리하는 부분을 공유하면서 글을 맺고 싶다.
이 지리멸렬한 꼭지의 결론을 ‘적게 줄 바에야 차라리 주지 마세요'나 ‘일도 못하는 주제에 열정페이 운운하지 마라'쯤으로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다면 무진장 섭섭할 것 같다. 난 그저 ‘돈보다 계속 살아갈 의미를 주세요. 그게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될 만큼 많은 돈을 주시던가요' 하고 말하는 우리 시대의 청춘이 서글퍼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어디에도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 하나 없이 ‘물질' 또는 ‘의미'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이… 진실로 한심한 세대가 맞느냐고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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