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관점에서, 지난 30년의 인구변동과 세계화 추세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디플레이션 요인이었으나 앞으로는 인플레이션 요인이 될 것이다.
중국과 동유럽의 세계시장 편입은 노동시장에 강력한 초과공급을, 자본시장에 초과저축을 촉발했으나, 이들 국가의 저출생 / 고령화,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고령화된 인구(피부양계층)는 생산보다 소비를 많이 하는 ‘소비자’ 계층이며, 특히 이들의 수요가 높은 돌봄의료 서비스업은 자동화가 어려운 노동집약적 의료산업이다.
중앙은행의 ‘성장을 유지하며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라는 역할은 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를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과의 갈등관계에 놓일 것이며, 부채의 함정을 탈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단위의 거시경제 차원에서 ‘인구변동’ 흐름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한 책. 각 챕터마다 주장이 간결하고 근거가 있으며, 예상할 수 있는 반박을 소개하고 미리 재반박하는 등 구성이 매우 탄탄하다. ‘고령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초석으로 삼기엔 정말 좋은 책이었다.
저자는 중국의 부상과 인구변동이 만든 ‘스위트 스폿(최적지점)' 이 지난 30년간 인플레이션, 금리, 불평등의 경로를 규정해 왔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동유럽이 세계무역시장에 편입되면서, 세계 노동시장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초과공급이 발생했다. ‘세계화’라는 흐름은 선진국 내부에 있던 제조기지는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게 했고, 교역량의 증가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누렸다.
이 선순환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계층은 선진국의 저숙련 노동자 계층이었다. 기업이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면서 노동자의 임금 교섭력이 크게 떨어졌고, 자연실업률은 하락했다. 반대로, 기업이 가진 자본의 상대적 수익성(가치)가 상승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경제 번영 - 꾸준한 성장률, 낮은 실업률, 안정된 인플레이션 - 이 있었기에 반발이 적은 편이었으나, 셋 중 하나라도 흔들린다면 저숙련 노동자 계층에서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인구변동으로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변화는 크게 세 가지다.
- 출산율 감소 - 노동인구 증가율의 감소. 특히 지금의 추세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었던 중국에서도 저출생, 고령화가 진행중이다.
- 고령화 간병의 경제적 비용 증가.
특히 치매의 경우 고령자의 수명은 단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치료와 돌봄에 투입해야 할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 둔화되는 세계화.
- 세계화로 손해를 보았던 계층에서 반발이 폭발하면서 국가주의가 정치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화의 핵심이었던 ‘국경 간 재화와 서비스, 자본의 이동’에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 노인간병 서비스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하기 어렵다. 감소하는 자국 내 노동자원에 의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다.
이 변화에서 발생할 경제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노동력 증가율이 감소했으므로, 이를 상쇄할 만한 기술혁신 (자본혁신)이 있지 않다면 전세계의 실질성장률이 감소한다. (3장)
- 세계가 인플레이션 평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는 ‘생산'활동이 ‘소비'활동보다 많다. 그러나 피부양인구는 ‘생산'보다 ‘소비'가 많다. 노동자가 줄어들고 고령자가 늘어난다는 건, 생산활동 인구보다 소비활동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 실질이자율이 장기 우상향할 것이다. (6장) 투자수요는 여전히 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 개인: 노령층의 주택수요는 상대적으로 꾸준할 것이다.
- 기업: 노동자가 귀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를 줄일 수 없다면,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도 기업은 자본/노동 비율 중 자본의 투자비중을 높일 것이다.
- 불평등은 완화될 것이다. (7장)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의 “불평등에는 심화 패턴이 있고 거스를 수 없다” - 저자는 이 주장을 부정한다.
불평등의 원인은 노동시장의 압도적인 공급증가로 인한 노동자의 협상력 감소 때문이었고, 노동공급이 역전되면 노동자의 협상력이 오르기에 불평등은 감소할 것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의 “불평등에는 심화 패턴이 있고 거스를 수 없다” - 저자는 이 주장을 부정한다.
그렇다면 노령층이 소비에 사용할 재원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 은퇴 연령이 뒤로 밀린다. 더 오래 일한다. - 쉽지 않음.
- 노동자가 저축 재원을 늘려 은퇴에 대비한다 - 쉽지 않음.
-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저축은 정부연금 예상치와 반비례 관계다. 정부연금이 많이 보장해준다면, 노동자는 저축을 덜 한다.
- 그렇다면 ‘연금을 덜 받도록'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에서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에게 매우 위험한 주제다.
- 여기에, 취직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면서 노동자가 은퇴를 위해 저축할 수 있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 세금을 더 걷어서 노령층의 지출에 활용한다.
- 노동인구와 실질성장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지이지만, 노령층의 높은 투표율과 투표인구 /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표방하는 주요 약속 중 하나다.
예상되는 질문이나 반박에 대한 답변
고령화의 대표격인 일본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이 하나도 안 나왔다. (9장)
- 대외 여건이 다르다. 당시 일본 국내만 보면 고령화였지만, 세계적으로는 고령화 추세가 아니었다. 일본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취한 방법들을 보면 세계화가 주는 효율성을 충실히 따랐다. 전세계적인 고령화가 진행될 앞으로의 세계는 일본의 모습과 다를 수밖에 없다.
- 일본은 특유의 고용구조 / 노동시장 특성상 고령인구의 경제활동률이 높다. 일본과 경제구조 / 노동시장이 다른 서구권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고령인구의 경제활동률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고령화를 상충할 수 있는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자동화를 시도한다거나, 장노년층 노동시장 참여를 높인다거나, 인도 / 아프리카 등 출산율 높은 국가의 역할을 기대한다거나. (10장)
- 자동화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다. 수요가 많아질 고령층 돌봄서비스는 자동화하기 어려운 분야이고, 제조업의 자동화와 서비스업으로의 일자리 이동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앞으로 증가할 분야의 노동수요를 자동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논쟁적일 것이다.
- 장노년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연금제도 보장률과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 따라서 연금제도 혜택을 축소하거나 은퇴연령을 높이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노동참여율이 크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연금개혁 사례를 보았을 때 고령화 흐름을 상쇄할 만큼 크게 바꾸기는 어렵고,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는 시도다.
- 이민, 또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존재. 저자는 인도와 아프리카는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세계 여건이 다르다. 중국 부상기와 달리 지금은 서방뿐 아니라 동아시아도 노동공급이 감소하는 시기로, 임금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각 국가들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라는 논리가 환영받기 어렵다.
- 대규모 경제발전을 계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행정자본이 부족하다.
- 아프리카의 경우 재화와 서비스를 이동할 경우 아프리카 53개국 간 ‘국경 이동'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고, 대규모 경제조직을 운영해본 적 없는 소기업 경제라서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상태다.
- 인도의 경우 분절된 사회구조, 협조와 노력을 요하는 사회간접자본 품질 / 계약이행 등의 항목이 OECD 최하위권이다. 금융자본, 물적자본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이행할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제도적 여건도 부족하다. (민주적인 문제해결 방식도 잘 동작하지 않고, 사회주의적인 동원/투입 방식도 불가능한 사회 구조)
- 이민: 현재 추세대로라면 고령화 흐름 상쇄는 불가능하다. 고령화를 상쇄할 만한 효과를 만들기에는 이민의 규모가 너무 작으며, 선진국에서는 세계화의 피해자였던 계층을 중심으로 ‘반 이민'을 외치는 우파 포퓰리스트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부채의 함정 - 정부와 중앙은행의 동상이몽
중국과 세계화로 촉발된 디플레이션 압박에 대응할 목적으로 중앙은행은 대규모 팽창적 통화정책을 사용했다. 명목이자율 / 실질이자율 둘 다 유례없이 낮은 수준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 유럽에서는 주택을 비롯한 자산가격에 거품이 꼈고, 폭발했던 게 금융위기였다. 이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팽창적 통화정책의 극단인 양적완화 / 공식 마이너스 금리 등이 사용됐고, 개인이나 기업이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환경이 지속됐다.
이렇게 부채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된 게 현재 상황이다. 인구변동의 흐름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경우 개인이나 기업의 부채상환 압박이 커지게 된다. 이들이 파산하거나 신규투자 / 소비를 줄이게 될 경우 경기침체가 발생할 텐데, 정치인이나 재정정책 담당자는 중앙은행이 경기침체를 만드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그동안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정책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동작했지만 앞으로는 정책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럼에도 부채의 함정을 해결할 방법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통화정책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정부의 재정정책을 활성화할 수 있으면서도 조세로 인한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인세 구조 개혁, 토지세, 탄소세 등이 언급된다. 그러나 저자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듯,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방법 자체가 수많은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설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보니 따로 요약하지 않았다. 저자의 해결법이 궁금하다면 11장과 12장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의 성장을 통한 해결법이지만, 인구대역전으로 우리가 겪게 될 예견된 미래 중 하나가 성장률의 감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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