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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독자와 책이라는 매체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책을 쓰면 책이 어떻게 되는지의 아주 적절한 예시

글쓰기 자체를 배우려면 ‘신동인 기자의 글쓰기 3GO'를 추천. 읽어본 책으로는 차라리 그게 더 알참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책을 비판하기 위해 논리력을 다듬게 되는 아주 희한한 책

 

강연이나 설명회를 듣고 난 다음 강연자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비즈니스 글쓰기’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다. 친구에게 보내듯 격의 없이 메일을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메일을 보내야 나쁜 인상을 주지 않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보통 해외 바이어에게 메일을 보낼 때의 예절이 많이 나오다보니 제대로 된 예시를 접하기도 어려웠다. 학교 도서관에서 비즈니스 메일 관련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잡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큰 도움이 된 책은 아니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 쓴 글의 예시’이다. 글 쓰는 방법론을 아무리 예찬한다고 해도, 잘 쓴 글 하나를 분석해서 직접 보여주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예시를 바탕으로 비슷하게 직접 써 보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글 실력이 늘 수 있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법만 주구장창 늘어놓다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 책을 혹평하는 이유는, 책이라는 지식 전달 매체가 갖는 특징이나 장단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강의를 활자로 요약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책이라서 제공할 수 있는 순수한 장점이 거의 퇴색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은 저자가 기업체에서 30여 개로 제공한 인터넷강의를 책으로 펴낸 형식이다. 문제는 한 강의에서 다루는 깊이를 봤을 때 인터넷강의도 길어야 10분에서 15분 안팎일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인터넷강의로 15분 내에 글쓰는 방식 하나를 설명하려면 사례는 생략된 채 방법론만 나열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기업체에서 일하시는 분들 기억하기 편하시라고 온갖 약어를 동원해서. 이를테면 이메일 글쓰기 법칙으로는 SEND가 있다. S(Small talk - 간단한 인사), E(Executer - 발신자 소개), N(Necessary - 용건 어필), D(Demand - 피드백 요쳥) 과 같은 식이다. 경조사와 같은 날 특별한 글쓰기라면 ROI; R(Relevance - 연관성), O(Originality - 독창성), I(Impact - 강조)이고, 상대에게 제안하고자 할 때는 FAB, F(Feature - 특징), A(Advantage - 장점), B(Benefit - 이득)을 갖춰 제안하라는 식이다.

 

매 주 하나씩 올리는 인터넷강의라면, 매 강의마다 글쓰기 원칙을 약어로 설명하는 게 기억하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가뜩이나 인터넷강의 15분의 분량이면 책의 한 챕터에 할애한 분량이 짧은 수밖에 없는데, 매 장마다 약어가 넘쳐난다. 읽는 사람이 질리기 딱 좋은 형태다. 시간을 들여 읽을수록 헷갈릴 수밖에 없다. 약어 설명한 다음 강의에서 말로 설명한 예시 몇 줄 나온 뒤 챕터가 끝나면, ‘대체 이걸로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든다.

 

기업체에서 글쓰기 인터넷강의를 연다면,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를 처음 몇 강에 할애할 수 있다. 관심이 없을 법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환기해야 강의를 들을 테니. 글쓰기를 배우면 인생이 바뀔 수 있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식의 희망적인 얘기도 필요하다. 이 내용이 책에서도 초반 몇 장에 걸쳐서 서술된다.

 

과연 책에도 이 내용이 필요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책을 집어들거나 구매한 사람들이라면, 이미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책을 들었다는 건 기꺼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글쓰기에 투자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굳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몇 장에 걸쳐서 다시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책 전반에 걸쳐서 같은 예시가 반복된다. IBM 부사장 ‘신디 카터’라는 사람이 한 말 중 ‘누군게에게 이메일을 받으면 나는 그 사람의 링크드인, 페이스북, 최근에 올린 트윗을 확인한다. 비즈니스의 생명인 맥락과 콘텐츠를 읽기 위해서다’ 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에 걸쳐 네 번 인용된다. 인터넷강의라면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책에서는 독자의 지루함만 증가시키고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같은 예시를 계속 말하면서 설득하다 보니 설득력도 떨어지고 재미도 없어진다.


즉 인터넷강의를 별다른 변형 없이 그대로 책으로 펴내면서, 책을 읽을 법한 독자의 특징이나 성향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음이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책이다.

 

 

 

책을 인터넷강의의 기록으로 쓰기보다는 인터넷강의의 보완재로 쓰는 것이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더 나았을 것이다. 짧은 인터넷강의로 담지 못했던 글쓰기 예시나, 인터넷강의에서 시간상 하지 못했던 원리를 보충 설명하는 등의 방식을 썼으면 어땠을까. 인터넷강의를 유료로 전환하고 책을 구매한 독자에게 일정 부분 인터넷강의 결제액을 할인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훨씬 짜임새 있는 구성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책 자체가 주는 정보로만 보면, 기자 한 분이 브런치에 쓴 글쓰기 방법론을 모아서 펴낸 ‘신동인 기자의 글쓰기 3Go’보다도 못하다. 책을 읽었지만, 책을 비판하기 위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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