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접받는, 성공한 직업군인 의사이자 교수가 겪었던 우울증, 불안장애 고백
정서적 아픔을 공개하지 못하고, 내 탓이라며 삭히는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 라며 위로 / 공감하는 글
객관화 불가능한 개인의 고통을, 타인의 고통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게도 건강한 위로가 되지 못하며, 타인에게 위로를 전하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약간의 사회분석 요소가 가미된 에세이 형식의 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의사’와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나약함, 취약함을 털어놓는 글이다. 정신과 의사로 많은 환자들을 대하며 ‘자신의 나약하고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첫걸음' 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그러나 ‘약점을 드러내면 공격받는' 사회에서 먼저 용기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진솔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저자가 자신의 20대가 어떠했는지를 소회한다. 불안장애가 심해지고, 우울증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아냈는지가 담담하게 담겨 있다. 상황과 환경, 정서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를 저자의 글로 직접 읽으면서 느껴야 하기에, 어떻게 요약해도 내용을 담을 수 없어서 쓰지 않으려 한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문구만 정리한다면
정신과 의사로서 느끼는 ‘위로'의 올바른 자세는
“당신이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하지만 들어보고 싶고, 도울 만한 부분이 있다면 돕고 싶다.” 라고 한다.
‘모른다'를 인정하는 건 나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를 위로할 수도, 상대에게 위로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목숨을 걸고 직장에서 살아가지만, 사실 직장에서 나는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다.
일 때문에 소홀해지기 쉬운 가정에서의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통제할 수 없는 환경 문제로 질환을 앓거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를 정말 많이 접할 수 있다.
사회적인 성공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거나, 오랜 시간 투자한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에서는,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 원인으로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런 자책이 개인의 정신건강을 병들게 한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본질적으로 비교에서 온다. 자신의 열등감을, 다른 분야에서의 우월감으로 상쇄하는 건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추구하는 가치관의 다양성이 결여된 문화'가 ‘비교하기 쉬운 사회'를 만들어낸 원인 중 하나라고 꼽았다. 이상적인 기준을 맞춰놓은 사회일수록 비교의 유혹이 커지는데, 추구하는 가치관조차 비슷하다 보니 줄세우기도 쉬운 구조가 됐다. 특정 시기엔 취업하고, 특정 나이까지는 결혼해야 하고… 라는 정답이 오랫동안 공유된 사회에서는 절대다수가 불행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정답에서 멀어진 사람은 정답에 근접한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이 쌓이고, 정답에 근접한 사람조차도 자신보다 더 정답에 근접한 사람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하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은 잘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진심이 누군가에게 도달하기만 하면, 이 책은 역할을 충분히 해낸 거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느끼는 아쉬운 점은 ‘공감으로 시작해서 이성으로 끝난 글’ 같다는 것.
사실 우울, 자살, 정신병리 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도 사회구조적 원인을 꽤 많이 짚어준다. 과도한 경쟁, 정답이 정해진 사회 등등… 하지만 사회구조적 문제를 깊게 다루기 시작하면 ‘위로와 공감’의 진정성이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건 다 사회 탓이야’라는 식으로 흘러가 버리면, 역으로 ‘개인인 너가 사회구조 폭력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접근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취지인 ‘취약점을 드러내고,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고 싶다'에 좀더 몰입하려면, 저자의 인생 서사를 좀더 깊고 풍성하게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책을 읽을수록 ‘나의 과거사는 이런 점이 힘들었다'라는 고백이라기보다는 ‘A라는 사회구조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 예시로 내 인생의 이런 부분이 있다'라는 인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MBTI식 표현을 빌리자면, 공감 F를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이성 T로 글이 마무리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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