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요약 독서

프리드리히 니체 아포리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inspirit941 2025. 11. 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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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해준 정답을 거부하고, 안주하는 삶을 경멸하며, 고통을 수용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며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어라.
니체가 한평생 저술한 모든 저서들 속 어딘가에 있던 경구를 묶어낸 글
해설이 거의 없어서, 니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책만으로 니체의 생각을 읽어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니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는 취지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버겁던 시절, 니체라는 철학자는 이런 고통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다만 이 책은 철학 해설서가 아니라 니체의 잠언집 모음이기 때문에, 친절한 해설이 포함돼 있지 않다. 사랑을 고백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이라던가, 지독한 유전병으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다 홧김에 쓴 듯한 내용, 반골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표현 (평등한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 민주주의는 퇴폐주의의 보편화이다 / 교회라는 동물원) 등 날선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니체의 글은 전반적으로 ‘체념이나 무기력’보다는 분노 또는 각성의 힘이 담겨 있는데, 고통을 단순히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 다음 ‘나의 각성과 성장을 위한 매개’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이 굉장히 유명한데, 나는 이 문장을 ‘나는 왜 이렇게 고통받고 힘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중세 기독교의 답 ‘그건 너가 죄인이라서 그렇다’을 납득할 수 없었다는 데서 출발한 게 아닐까 싶었다.




기억에 남는 격언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리는 타인에게 쾌감 또는 고통을 줘야 타인이 나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 나의 힘이 ‘인식’되기 위해 우리는 대상에게 고통을 준다. 누군가를 인식하는 데에는 고통이 쾌감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으면, 인간은 항상 원인을 묻지만, 쾌감은 원인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군가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길 바라고, 누군가의 쾌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한다”

 

인간은 네 가지 착각을 교육받았다.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교육받았기에 지금도 그렇다고 착각하고, 상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고 교육받았기에 공상에 머물러 있고, 동물이 아니라고 교육받았기에 동물이 되려고 노력 중이며, ‘가치’라는 개념을 교육받았기에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너무 빨리 결정하고 있다. 현대는 고민이라는 형식을 증오한다. 고민과 사색은 그저 걸어가면서 해치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품위를 상실하고 있다.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단지 기계일 뿐이다. 기계의 성능이 곧 인간의 생각과 품위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가치’를 재단하고 있으며, Yes / No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더 많은 사유와 반추가 필요하겠지만, ‘고통스러운 삶’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이 책으로도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었다. 

 

니체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고통을 너가 어떻게 이겨내고 성장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며, 그 성장의 목적지로는 새로운 것의 ‘창조’를 제시한다. 예컨대 인간 역사에서도 풍요롭고 평등한 환경이 주어졌을 때보다는 불평등, 불합리한 제도에서 오는 반목과 고통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발현되어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냈다.

 

다만 인간에게는 고통을 필수불가결한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고통을 피하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중세 기독교의 교리는 ‘너가 고통스러운 건 너가 죄인이라서 그렇다 - 죄짓지 마라’ 는 식으로 고통을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삼기도 했고, 인간들의 집합체인 국가 / 사회는 인간이 마주해야 할 고통을 회피하거나 망각하는 방법을 여럿 제공하고 있다. 고통이나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제도화한다거나, 멋지고 향락적인 문화예술을 제공한다거나.

 

니체는 이렇게 인간이 성장의 매개로 사용해야 할 고통을 ‘이건 당연한 거지’라고 무디게 반응하도록 하는 모든 것들을 비판한다. 국가나 사회에서 당연시하는 암묵적 규범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교양적 속물’이라는 표현을 들며, 비판적 사고가 거세된 채 표면적이고 경험적인 문화 체험에만 몰두하면서도 스스로는 교양 있다고 자만하는 모습을 비판한다. 기존 도덕과 가치에 자아의탁하고, 문제의식과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며, 그렇게 겉핧기로 쌓은 지식을 자기 발전에 활용하기보다는 도취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식 안에서 자기기만하지 말고, 그 안에서 너만의 길을 찾으라’.

 

살아내면서 겪는 고통을 인정하고, 이겨내고 성장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세상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암묵지를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여 삶을 개척하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다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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